故 임병근 일병, 美 하와이 거쳐 봉환돼 4년 만에 신원 확인

6·25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인 북한 함경남도 장진호 전투에서 숨진 국군 병사의 유해가 66년 만에 가족의 품에 안기게 됐다.

국방부는 21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보관해온 장진호 전투 전사자 유해의 신원이 유전자 검사를 통해 고(故) 임병근 일병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날 임 일병의 전사자 신원 확인 통지서, 위로패, 유해 수습 당시 관을 덮은 태극기 등을 부산에 사는 임 일병의 조카 임현식(71) 씨에게 전달했다.

1930년 5월 5일 태어난 임 일병은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스무 살의 나이로 미 7사단에 카투사로 입대해 같은 해 12월 6일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했다.

장진호 전투는 미군 전사(戰史)에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돼 있다.

당시 미 해병 1사단은 혹독한 추위 속에서 10배가 넘는 중국군과 사투를 벌인 끝에 치명적인 타격을 줘 흥남 철수작전이 성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약 10만명의 피난민이 북한을 탈출한 흥남 철수작전은 2014년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다뤄졌다.

적지에서 전사한 임 일병의 유해는 영영 찾지 못할뻔했으나 북미 합의에 따라 미국이 2000년 북한 지역에서 미군 유해 발굴작업을 시작하면서 전기를 맞았다.

임 일병의 유해는 장진호 전투 지역에서 미군 유해 발굴작업을 진행한 미 '합동 전쟁포로·실종자 확인 사령부'(JPAC)가 찾아낸 유해들에 포함됐다.

JPAC가 북한 지역에서 발굴한 유해를 하와이에 있는 본부로 옮겨 정밀 감식작업을 한 결과, 임 일병을 포함한 12구의 유해는 아시아계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미 양국 군 당국은 이들 유해가 모두 국군 전사자라는 결론을 내리고 2012년 5월 이들을 한국으로 봉환했다.

6·25 전쟁 당시 임 일병이 부산에서 입대한 점을 고려하면 임 일병의 이동 거리는 부산에서 장진호와 하와이를 거쳐 서울에 이르기까지 2만1천㎞에 달한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하와이에서 봉환한 유해 12구 가운데 2구(김용수 일병과 이갑수 일병)는 신원을 확인하고 유족을 찾았지만 임 일병의 신원은 귀국한 지 4년 만인 올해 2월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장진호 전투 전사자 유족을 집중적으로 추적한 끝에 임 일병을 기억하는 조카 임현식 씨를 찾아냈고 유족들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하와이에서 돌아온 이름 없는 유해 10구 중 1구가 임 일병이라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66년 만에 삼촌을 찾은 임 씨는 4남 1녀 중 넷째인 임 일병이 다른 형제들 대신 자원입대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생전에 삼촌의 유해를 모시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이제야 가슴에 맺힌 한을 풀었다"고 털어놨다.

임 씨는 "삼촌과 함께 카투사로 참전했던 5촌 당숙이 살아 돌아와 삼촌의 행방불명 소식을 전했다"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들의 전사 통보를 받고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고 말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유족의 요청에 따라 임 일병의 유해를 오는 6월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할 계획이다.

임 일병과 함께 하와이에서 돌아온 나머지 유해 9구는 지금도 유해발굴감식단 유해보관소에 있다.

임 일병 유해의 신원이 확인됨에 따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2000년 이후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진행하며 신원을 찾아낸 유해는 모두 110구로 늘었다.

이학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은 "비무장지대(DMZ) 북쪽에는 아직도 4만여구의 호국용사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북한과 협의만 이뤄진다면 언제든지 호국용사들의 유해를 발굴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미 군 당국은 오는 28일에는 한미연합군사령부에서 미 JPAC가 추가로 국군 전사자로 확인한 유해 15구를 국내 봉환하는 행사를 열 계획이다.

이 자리에서 우리 군은 작년 11월 강원도 양구 백석산 일대에서 찾아낸 미군 유해 2구를 미국 측에 전달한다.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ljglor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