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통 외교전문가들 외면속 노정객·軍퇴역인사들로 급조
클린턴, 최측근 제이크 설리번이 좌장…빌 번즈·웬디 셔먼 합류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주변에는 '선두주자'인데도 이렇다 할 외교 책사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한반도에 전쟁이 나도 미국은 불(不)개입하겠다는 식으로 미국의 전후 질서와 동맹체제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발언들을 쏟아내면서 외교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공화당의 정책 엘리트들이 일제히 등을 돌리고 있어서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토머스 라이트 연구원은 한 매체에 "공화당의 기성세력은 트럼프의 공약에 경악하거나 반대하고 있다"며 "그래서 (외교정책에 정통한) 사람들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워싱턴D.C.에서 명망이 높은 외교안보전문가 110여 명이 지난달 트럼프 선거캠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공개로 선언한 것이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달 21일 1차 외교안보팀을 공개한 이후 트럼프는 2주일이 지나도록 추가적인 명단을 내놓지 못할 정도로 '구인난'을 겪고 있다는 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밥 카스텐(73) 전 위스콘신 주 연방 상원의원이 2일(현지시간) 트럼프 선거캠프의 외교안보팀에 합류하겠다고 선언한 게 유일하다.

1981년부터 1993년까지 상원의원을 지낸 노(老) 정객인 카스텐은 2008년 공화당 대선 경선 때 루디 줄리아니 선거캠프에서 외교 문제를 조언한 적은 있지만, 대외정책에 정통한 인물은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트럼프 외교안보팀의 면면을 보면 '급조된 외인부대'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총책은 앨라배마를 지역구로 둔 제프 세션스(69) 연방 상원의원이다.

주(州) 검찰총장 출신의 세션스 의원은 17년간 상원 군사위에서 활동하고 현재 군사위 전략군 소위원장을 맡고 있어 핵과 미사일, 정보, 동맹정책에 밝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자동차 공장을 지역구에 두고있어 한·미 관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대외 정책을 폭넓게 다뤄본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데다가, 트럼프의 외교안보 구상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는 미지수다.

트럼프가 언론이나 주변인사들에게 "외교안보팀에 임명했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들 말을 듣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군사분야 자문관을 맡은 육군 중장 출신인 케이스 켈로그는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이라크 재건 활동을 주도했던 인물로 퇴역 후에는 IT(정보기술) 분야 국방하청업체에서 일을 해왔다.

벤 카슨 선거캠프에 있다가 트럼프 쪽으로 적을 옮긴 조지 파파도폴러스는 허드슨연구소에서 에너지안보 분석가로 활동했다.

국방부 감찰관을 지낸 조 슈미츠는 2007년 이라크에서 비무장 이라크인들을 폭격해 논란을 빚었던 민간군사기업인 블랙워터의 임원으로 있었다.

미국 군사전문지인 밀리터리 타임스는 "트럼프 캠프에서는 거물급을 찾아볼 수 없다"며 "젭 부시나 마르코 루비오, 카슨 캠프에 있던 인물들이 넘어왔다"고 분석했다.

이에 반해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은 화려한 외교안보팀의 면면을 과시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상원의원과 국무장관을 지내며 켜켜이 쌓아온 인맥을 타고 명망 있는 외교 책사들이 대거 몰려들고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숫자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 정도"라며 "새로운 인물이 더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그 정점에는 클린턴의 최측근인 제이크 설리번(39)이 있다.

2008년 민주당 경선 때 클린턴 캠프에서 부(部) 정책실장을 지낸 설리번은 클린턴 국무장관 시설 부(部) 비서실장과 정책기획실장을 지낸 데 이어 조 바이든 부통령의 안보보좌관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部)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다.

한·미 동맹과 한반도 현안에 정통한 인물로 평가된다.

거물급으로는 존 케리 국무장관이 '외교의 전설'이라고 극찬했던 빌 번즈 전 국무부 부장관(현 카네기국제평화연구원 원장)과 이란 핵협상의 미국 측 대표였던 웬디 셔먼 전 정무차관이 있다.

두 사람은 클린턴의 신임이 워낙 두터워 클린턴이 당선될 경우 차기 국무장관감으로 거론되고 있다.

아시아 통(通)인 로라 로젠버거(36)는 10여년간 국무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북한과 아시아·태평양 정책에 초점을 맞춰 활동해온 인물이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국방부 국제안보 차관보를 지낸 데릭 촐렛은 중동정책 전문가다.

클린턴 국무장관 때 국무부 테러담당 차관보를 지낸 대니얼 벤저민도 캠프에 합류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클린턴 캠프에 이처럼 정통 엘리트들이 몰려든 것이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나온다.

새로운 인물이 많지 않아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는데다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틀을 뛰어넘는 과감한 정책적 변신을 시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