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산유량 동결 지지 선언에 유가 급등…사우디는 신용등급 강등

지난달 서방의 제재가 풀린 이란이 처음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했던 국제 원유시장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이란은 산유량 동결에 동참하지도 않았으면서 17일(현지시간) 산유국과 회의에서 "동결을 지지한다"는 말 한마디로 유가를 끌어올린 반면 사우디는 전날 동결을 선언했음에도 국가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수모를 맛봤다.

2014년 7월부터 본격화된 유가 하락 국면에서 사우디는 이란, 베네수엘라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일부 회원국의 감산 요구를 수요·공급의 시장 원리를 이유로 외면해왔다.

여기엔 이란이 원유 시장에 복귀하기 전에 저유가를 이용해 시장 점유율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경제적 논리 외에도 감산을 요구한 곳이 모두 반미·반사우디 진영이라는 정치적 배경도 고려됐다.

저유가를 유지해 이란과 러시아의 돈줄을 죄어 중동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당시엔 제재 해제 시기가 이르면 올해 2분기 중이 될 것이고, 원유 수출이 재개돼도 이란이 제재 이전의 산유량을 회복하는 데 상당히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란은 예상을 깨고 신속히 움직였다.

서방과 약속한 핵합의안(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을 지난해 말까지 모두 이행, 제재 해제 시점을 1월 중순으로 당겼고, 제재로 끊어진 유럽 대형 에너지 회사와 원유 수출 계약을 속속 되살렸다.

이란은 제재 해제가 선언된 '이행일'(Implementation Day) 꼭 한 달이 지난 15일 유럽으로 원유 400만 배럴을 성공적으로 보내면서 국제 원유시장 복귀의 신호탄을 쐈다.

400만 배럴은 OPEC 2위 산유국인 이라크의 하루 산유량에 육박할 만큼 만만치 않은 양이다.

이란의 유럽시장 진출은 산유량 기준 세계 1,2위를 다투는 러시아와 사우디가 16일 긴급 회동해 1월 기준으로 산유량을 동결하기로 전격 합의하게 된 계기가 됐다.

OPEC 회원국과 비(非)회원국을 대표하는 이들 '빅2'의 이례적인 동결 합의에도 유가는 반응하지 않았다.

감산을 기대했으나 동결에 그친데다 산유량을 1월 기준으로 묶어도 저유가의 원인인 공급 과잉을 해소하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사우디와 러시아의 전세계 산유량의 13%를 차지하긴 하지만 산유국이 모두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과 그간 동결 합의가 흐지부지됐다는 불신도 이런 평가가 나온 원인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시장의 시선은 이란으로 쏠렸다.

사우디 산유량의 3분의 1정도에 그치지만, 세계 4위의 확인 매장량을 보유한 이란에 세계적인 에너지 기업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특히 제재 해제의 가장 큰 과실인 원유 수출 재개에 기대가 큰 터라 앞으로 잃어버린 시장을 회복하기 위해 공격적인 원유 수출 전략을 펼 게 확실하다.

원유 시장에서 초대형 시장인 중국과 인도와 육상으로 이어져 이란은 사우디보다 지리적으로도 유리하다.

현재 수요량과 비교해 잉여 산유량이 일일 250만 배럴 안팎임을 고려하면 이란이 앞으로 수개월 안에 추가로 늘리겠다는 일일 100만 배럴은 적은 양이 아니다.

사우디는 이란의 제재 해제가 임박한 지난달 2일 이란의 경고를 무시하고 시아파 지도자를 처형하면서 지역 패권을 두고 이란과 정면충돌해 여전히 양국간 정치·외교적 긴장이 팽팽하다.

이 때문에 사우디의 산유량 동결 결심에 이란이 한동안 화답하지 않을 공산이 커 보이지만 이란 역시 고유가가 절실한 상황이어서 명분만 마련된다면 유가 인상을 위한 조치에 동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베네수엘라와 카타르가 중재한 동결 제안에 이란이 "지지한다"면서 동결 동참엔 모호한 입장을 취한 데서 이란의 복잡한 계산을 엿볼 수 있다.

(두바이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hsk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