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청년 일자리는 성공적으로 파괴되었다 (3)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해고) 지침’은 일종의 행정규칙이다.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문제’를 다루면서 사법부는 ‘지침’의 효력을 부인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았다. 판결은 옳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행정규칙은 행정 만능시대의 유산이다. 더구나 규칙은 원래 공무원의 업무 방법을 지시할 뿐이어서 국민을 직접 규율할 수 없다. 그러나 법원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킨 판결은 매우 나빴다. 이미 사회적 합의가 있는 개념을 사법부가 과잉되게 축소해석하고 말았다.

사법부의 좌경화, 특히 노동법 분야는 중증이다. 더는 시장경제 원리에 입각한 판결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다. 노동시장은 사적자치의 영역(사법:私法)이 아닌 정부 규제 즉, 공법이 규율하는 영역이 돼 버렸고, 고용 계약의 자유는 아예 폐기되고 있다. 어떻든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은 지난 주말 ‘해고와 취업규칙 지침’ 발표로 깨끗이 항복선언을 한 셈이다. 민노총이 ‘개악!’이라며 흥분하는 것은 의외다. 아마 노회한 전략적 반응일 것이다. 국회의 절대적 지원이 있는 상황에서 ‘다시는 노동개혁이라는 단어조차 꺼내지 못하도록 만들고 말겠다’는 각오일 것이다. 전경련이나 경총이 노동부 지침에 대해 찬성 비슷한(?) 괴이한 논평을 내놓은 것은 요 며칠간 권력 측의 유무형의 압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이 길거리 1000만명 서명운동까지 벌이는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지침을 경제계가 대놓고 반대하기는 어렵다. 여의도 정치인들이 경제단체를 깔보는 것에는 다 그런 이유가 있다.

문제는 고용부의 ‘해고 지침’이 그나마 해고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차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쉬운 해고가 아니라고 노조를 설득하는 모양새지만 해고는 쉽고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최악의 판례를 지침으로 수용한 것이어서 이 기준에 따라 직원을 해고하려면 최소한 5년 이상이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그것조차 재판으로 가게 되면 이기권 장관이 강조하듯이 회사 측 패소 가능성이 크다.

이 지침은 우선 직원에 대한 상대평가를 금지시키고 있다. 업무 평가는 최소한 2~3년에 걸친 누적평가여야 하고, 저성과자의 심각성이 다른 사람의 업무를 방해할 정도에 이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라야 해고 절차가 시작된다. 그 다음도 문제다. 전환배치 등 다시 2~3년의 해고회피 기간을 두어야 한다. 또 해고할 때는 취직을 알선하는 등 회사 측 의무가 부과된다. 삼성그룹 정도의 인사관리 수준에서도 시행이 어려울 것이다. 사실상 불가능한, 그리고 무의미한 해고 지침을 정부는 왜 만들었을까. 그게 궁금하다. 그리고 정부가 말하는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 정도의 극히 예외적인 저성과자”라는 것은 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청와대는 재촉하고, 고용부는 거꾸로 달렸다. 결국 노동계의 완전한 승리다.

돈과 사람은 기업경영의 두 본질적 요소다. 전략과 업황에 따라 기업은 신속하게 돈과 사람을 재구성한다. 그러나 노동부 해고지침 아래에서 이제 재구성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갈수록 채용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또 채용하더라도 저성과 예상자를 미리 걸러내기 위해 높은 탐색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이 신중성은 당연히 기업으로 하여금 적정 인원보다 직원 수를 적게 운영하는 소위 과소채용을 구조화한다. 기업별로는 과소채용이지만 전체로는 실업의 증가다.

기업은 채용하고 해고한다. 자연스런 순환과정이다. 저성과자를 해고하고 새 인재를 채용함으로써 기업은 직원의 능력을 끌어올리고 취업희망자의 직업훈련 욕구를 자극한다. 기업은 그렇게 사회를 진화시킨다. 그 순환과정이 차단됐다. 해고를 금지하면 채용도 금지된다. 박근혜 정부는 입만 열면 청년 일자리를 걱정하지만 청년 일자리는 이렇게 봉쇄되고 있다. 기업은 이제 인사관리조차 정부의 지시와 명령을 따르게 됐다. 어떻게 하다 나라경영이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됐나. 해고를 둘러싼 작금의 논란은 골계적이기까지 하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