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층에 새겨진 원자폭탄 흔적…지구 '인류세의 시대'로
인간의 영향으로 지구의 현재 지질시대를 ‘인류세(人類世)’로 재분류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과 프랑스,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등 12개국 24명의 과학자와 학자로 구성된 국제연구팀 ‘인류세 워킹그룹’은 지구가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연대에 들어섰다는 수많은 증거가 발견됐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최신호(7일자)에 소개했다.

지구의 지질시대는 가장 큰 단위가 고생대와 신생대, 중생대 같은 대(代)이고 중간이 페름기, 백악기 같은 기(紀), 가장 작은 단위가 팔레오세, 플라이스토세 같은 세(世)로 구분된다. 과학자들은 34억년 전 첫 생명체가 탄생한 이후 많은 생물이 등장했다가 대량 쇠퇴한 변화를 기준으로 지질시대를 구분해왔다. 공식적으로 지금은 신생대 제4기 홀로세(현세)나 충적세라고 부른다. 지금부터 약 1만1700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뒤부터 현재까지 인류 문명이 시작되고 급격하게 발달한 시기를 말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부 과학자들은 지질시대를 새롭게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 시작했다. 지난 500년간 지구상 생물은 4분의 1이 사라졌고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 사용으로 이산화탄소 농도가 40만년 중 최고 수준에 이르는 등 홀로세로 설명하는 데 한계를 맞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2000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파울 크뤼천 박사는 “인류 전체가 지구에 큰 영향을 미쳤으므로 현 지질시대를 인류세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류세 시작 시점을 둘러싼 논란도 치열하다. 당초 산업혁명이 시작된 18세기에 인류세가 시작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최근에는 원자폭탄 실험이 있던 20세기 중반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 이번 연구에서도 퇴적층에서 방사성 물질(사진 붉은 점선)이 뚜렷이 나타나고 인구와 경제 규모, 소비 등 모든 게 폭발적으로 성장한 1950년대를 인류세 시점으로 봤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이 발효되기 전인 1945~1963년 핵실험이 집중되면서 수만년 후에도 알 수 있을 만큼 인공 방사성 물질들이 땅속에 남았다.

하지만 인류세가 새로운 지질시대로 인정받는 데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국제층서위원회(ICS)는 2008년에서야 홀로세를 정식으로 인정했다. 워낙 최근이라 전 지구적인 지질 변화의 증거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윌 스테펜 호주국립대 교수는 “인간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홀로세는 5만년 동안 더 지속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