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청와대가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중점 법안 직권상정을 압박하고 있다.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은 엊그제 정 의장을 방문해 경제활성화 법안, 노동개혁 5개 법안, 테러방지법 등에 대해 직권상정을 요청했다. 새누리당도 어제 의원총회에서 헌법상 대통령의 긴급 재정경제명령까지 언급하며 직권상정 요청 결의문을 국회의장에게 제출했다. 지금은 야당의 내홍으로 입법이 마비된 비상사태라며 정 의장의 결단을 거듭 촉구했다.

그러나 정 의장은 어제 기자간담회에서 선거구 획정을 위한 선거법은 직권상정이 가능해도 다른 법안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분명히 했다.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리는 개정 국회법 85조1항에선 국회의장의 법안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의장이 여야와 합의한 경우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경제 법안은 절대 반대를 고수하고 있어 한발짝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정 의장의 말대로 직권상정할 방법이 없다.

국회가 의사결정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의 덫에 스스로 빠져 아무런 합의도, 결정도 못 하는 구조적이고 치명적인 ‘불임(不姙)국회’가 된 것이다. 입법을 다수결이 아닌 ‘의원 60% 동의’로 만든 장본인은 바로 새누리당이다. 그런 새누리당이 자신들은 법을 지키고 국회의장은 지키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 입법 기능을 마비시킨 주범인 새정치연합이 청와대의 입법권 침해 운운하는 것도 어처구니없기는 매한가지다. 무능과 무책임의 극치다.

국회의원들은 제각기 열심히 한다고 자부할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점점 최악으로 치닫는다. 전형적인 구성의 오류다. 이 지경에 이른 것은 국회의 무능과 탐욕이 도를 넘어선 탓이다. 민생과 경제가 어찌 되건 말건 그들의 안중에는 다음 선거뿐이다. 선거구 획정을 질질 끄는 것도 정치 신인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운동장을 만들려는 여야의 묵시적 담합이 깔려 있다. 툭하면 의원내각제 주장이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더는 이런 국회를 유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