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받은 '차베스 포퓰리즘'…베네수엘라 좌파, 16년 만에 참패
베네수엘라 야권 연합이 16년 만에 집권 여당을 누르고 총선거에서 승리했다. 외신들은 사회주의자였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을 뜻하는 ‘차비스모(Chavismo)’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심판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는 6일(현지시간) 치러진 총선 투표 집계 결과 167석 가운데 야권 연합인 민주연합회의(MUD)가 적어도 113석, 여당인 통합사회주의당(PSUV)이 54석가량을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MUD는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등의 성향을 지닌 20여개 군소야당의 연합이다.

◆지속 불가능했던 포퓰리즘

베네수엘라는 1999년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한 뒤 16년간 한 번도 여당이 다수당 자리를 뺏긴 적이 없었다. 2000, 2006, 2012년 세 차례 연임에 성공한 차베스는 석유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대중인기영합적인 정책을 펼쳐 인기를 끌었다. 차베스 전 대통령은 2013년 3월5일 암으로 사망했다.

그해 4월에 치러진 선거에서 차베스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가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지지율이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베네수엘라의 주요 수출품목인 원유 가격이 계속 떨어지면서 경제난이 가중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자원을 팔아 들어오는 외화 수입에 의존해 성장했기 때문에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이 제대로 기능을 못했고, 그만큼 유가 하락에 따른 타격은 치명적이었다.

수도 카라카스에서도 먹을 것과 휴지, 기저귀 등 기본적인 식료품 및 생필품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정도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7월 베네수엘라 정부가 발표한 극빈층 비율(5.4%) 등 공식 통계들이 UN식량농업기구(FAO)가 조사한 것(7.3%)과 크게 차이난다며 정부가 현실을 감추려 애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UNFAO는 베네수엘라 국민 중 하루 한 끼도 못 먹는 사람들의 비율이 11.3%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정부 발표치는 5%였다.

◆빈곤층 급증…식량도 못 구해

2000년대 중반 20%대까지 떨어졌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2013년 49.8%까지 올라갔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은 연간 물가상승률이 지난해 68.5%라고 밝힌 뒤 더 이상 집계하지 않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이 나라의 물가상승률이 159%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4% 줄어든 베네수엘라의 GDP는 올해 10%, 내년에는 6% 더 쪼그라들 것이라고 IMF는 내다봤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국민의 불만이 커지면서 이번 총선에선 투표 참여율이 75%까지 높아졌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당초 투표를 6일 오후 6시까지 할 계획이었지만 줄을 선 유권자들이 투표를 못하게 되자 “줄을 선 사람들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지침을 내렸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야권 연합 지도자 중 한 명인 헨리 라모스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2019년까지의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 탄핵을 위한 국민투표가 치러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남미에서는 최근 잇달아 좌파 정권이 몰락하고 있다. 지난달 아르헨티나에서는 우파 정당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후보가 12년간 집권한 좌파 정당 ‘승리를 위한 전선(FPV)’의 다니엘 시올리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탄핵 위기에 몰려 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