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부활 이끈 '원샷법'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독일 지멘스와 함께 화력발전 플랜트 분야에서 3강을 이루고 있는 일본 미쓰비시히타치파워시스템(MHPS)은 설립된 지 1년8개월에 불과한 신생업체다. MHPS는 지난해 연매출 1조2000억엔(약 11조4000억원)을 거둔 데 이어 2020년까지 2조엔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MHPS가 설립된 배경에는 일본의 ‘산업경쟁력강화법(원샷법)’이 자리잡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2014년 1월 기존의 산업활력재생법을 개정해 마련한 이 법에는 기업의 사업 재편이나 신사업 진출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돕는 각종 방안이 담겼다. 각자 플랜트사업을 해오던 미쓰비시중공업과 히타치제작소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합작사 MHPS를 세울 때 일본 정부는 원샷법에 따라 등록면허세를 낮추고 투입한 자본금의 70%를 최장 10년간 손비(損費)로 처리해주는 등의 혜택을 제공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1999년부터 현재까지 일본의 사업재편 지원제도를 이용한 기업이 총 684개”라며 이 법이 일본 기업의 부활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거품경제의 붕괴로 위기에 놓인 기업들의 회생을 위해 1999년 산업활력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기업이 사업재편을 통해 스스로 체질을 개선하고 산업 기반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다. 아베 내각은 2014년 산업경쟁력강화법을 추가 제정해 산업활력법의 내용과 대상을 확대했다.

수요 감소와 신흥국 철강기업의 약진으로 어려움을 겪던 일본 최대 철강회사 신일철은 스미토모금속과 합병하면서 등록면허세를 50%가량 경감받았다. 합병 이후 신일철의 생산량은 세계 6위에서 2위로 뛰어올라 위기 극복에 큰 힘이 됐다. 지난해 소니는 PC사업을 매각하면서 등록면허세를 경감받았고, 오카모토유리는 자동차용 오목유리 전문 자회사를 설립하면서 등록면허세 경감과 채무보증을 함께 받았다.

사업재편 승인을 받은 일본 기업들의 생산성 역시 크게 향상됐다.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사업재편 승인 기업 488곳 중 성과보고서를 제출한 212곳을 분석한 결과, 생산성 향상 지표 중 하나인 유형자산회전율이 88.4% 상승했다.

일본 기업들이 원샷법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동안 한국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 여당도 원샷법을 벤치마킹해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활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국회 상임위에 상정조차 못하고 있다. 야당이 ‘재벌특혜법’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한국상장사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2010~2014년)간 분할·합병·자산양수도 등 사업재편을 벌인 1428개의 기업 중 중견·중소기업이 1093개로 76.5%를 차지했다. 중견·중소기업의 사업재편 수요가 크다는 의미다. 소한섭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중소기업 145곳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절반 이상(56.5%)이 법 도입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고 44.8%가 기활법 제정 시 신청 의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강조했다.

■사업재편 지원제도

기업이 신사업 진출이나 중복사업 부문 통합 등 사업재편 계획을 수립하면서 세제 감면이나 절차 간소화 등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정부가 심사를 통해 이를 승인해주는 제도. 개별 기업마다 적용되는 혜택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이란 이름으로 지난 7월 국회 발의됐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