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신동주측 배석하면 곤란"…사실상 거부

신동주·동빈 형제가 아버지 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집무실 관리권을 놓고 싸우는 와중에 신 총괄회장이 장기간 경영보고에서 배제되자 마침내 직접 계열사들에 보고를 지시했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은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측 관계자가 배석한다면 곤란하다면서 사실상 업무보고 거부 입장을 내비쳤다.

29일 롯데그룹과 SDJ코퍼레이션(회장 신동주)에 따르면 지난 26일 신격호 총괄회장은 14개 계열사 대표 앞으로 '정기 보고 촉구의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이 공문에서 신 총괄회장은 "최근 본인은 소송을 진행함에 있어 권리보호를 위해 전무 이일민(롯데그룹 소속 비서실장)을 비서직에서 해임한 바 있으나 이를 빌미로 각 계열사 임직원들이 그동안 시행하던 정기적 보고를 생략하거나 업무지시를 따르지 않는 등 고의적으로 업무를 방해하는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이에 본인은 이 시각 본인의 직접 지시 또는 본인의 사용인을 통한 시지에 불응하면 그 책임을 물을 것임을 통보하는 바"라고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이 통보서가 발송된 이후 29일 현재까지도 신격호 총괄회장에 대한 계열사의 업무 보고는 재개되지 않고 있다.

지난 19일 월요일 노병용 롯데물산 대표의 보고를 마지막으로 열흘째 신격호 총괄회장은 단 한 차례도 그룹 경영 현황을 보고받지 못한 셈이다.

19일 전까지 신 총괄회장은 90세가 넘은 고령에도 매일 오후 3~5시 사이 그룹 계열사들로부터 현황 등을 직접 보고 받고 질의하며 경영 상황을 파악해왔다.

하지만 일본, 한국 롯데 기준으로 각각 창사 70년, 48년만에 창업주에 대한 경영 보고가 완전히 끊어진 것은, 신동주·동빈 두 아들이 경영권 분쟁 와중에 신격호 총괄회장 집무실(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 관할권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16일 오후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SDJ코퍼레이션 회장)측은 자신들이 신격호 총괄회장 집무실을 관리하겠다고 신동빈 회장과 롯데그룹에 통보한 뒤 실제로 비서·경호인력들을 34층에 배치했다.

이 과정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은 롯데 정책본부 소속 자신의 비서실장 이일민 전무를 해임했고, 신동주 전 부회장측은 20일 총괄회장의 뜻이라며 새 총괄회장 비서실장으로 나승기 변호사를 임명했다.

이후 현재까지 34층 총괄회장 집무실은 사실상 신동주 전 부회장 인력이 장악하고 있지만, 롯데그룹도 이일민 전무의 '해임 무효'를 주장하며 이 전무를 비롯한 비서·경호 직원을 34층 근처에 대기시켜 놓았다.

형식적으로는 총괄회장 집무실을 '공동 관리'하는 것이나, 현재 총괄회장의 최측근에는 신동주 전 부회장 사람들만 있기 때문에 롯데 정책본부나 계열사들은 총괄회장과 거의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롯데 계열사 대표들은 그룹과 관련 없는 사람들이 총괄회장 집무실에서 퇴거하고, 제3자 배석 등의 장애가 해소된다면 언제든지 총괄회장 보고를 재개하겠다는 입장이다.

롯데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도 계열사 대표들은 언제든지 총괄회장께 보고할 준비가 돼 있다"며 "하지만 그룹과 전혀 관련없는 SDJ코퍼레이션측이 보고를 받거나 보고에 배석하는 경우 기밀사항이 제3자에게 유출돼 이사의 비밀유지 의무가 위반될 우려가 있다"며 보고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그는 "반대로 SDJ측의 방해로 계열사 대표들의 총괄회장 보고 등의 업무가 방해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여기에 최근 SDJ측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뜻이라며 새로 임명한 비서실장이 '가짜 변호사' 논란에 휩싸이면서 SDJ측을 더 못 믿겠다"고 덧붙였다.

롯데그룹은 또 공문의 발신자가 비서실장이 아니라, 이례적으로 신 총괄회장 명의로 돼 있는데다 자필 서명도 평소와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면서 공문 자체의 진위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shk99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