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은행 100여 곳 `재산숨긴 예금주 정보제출 조건부 불기소' 협정 수용
스위스은행 대상 사면프로그램 성과…국세청 납세자사면프로그램 정보와 연계


미국 검찰이 스위스로 재산을 빼돌린 미국 부유층의 탈세를 잡기 위해 스위스 은행들을 강력 압박한 결과 값진 탈세 정보를 대량 확보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이스라엘, 싱가포르 등 다른 나라 은행들로 조사를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기 이듬해인 2009년부터 미국 검찰은 부유층의 탈세를 막고 세수를 늘리기 위해 금융거래 투명성 강화를 내세워, 비밀주의의 대명사인 스위스 은행들을 지속적이고 강하게 압박해 이들로부터 속속 항복문서를 받아내고 있다.

미국 검찰이 동원한 전략은 문제 은행들과 '자백 조건부 불기소'라는 `불기소협정'을 맺는 것. 은행들이 부유층 고객의 자산을 숨겨줘 탈세를 도운 수법과 담당 임직원의 이름, 중매인 등의 정보를 제공하면 해당 은행을 미국 법원에 기소하지 않는 것이다.

검찰로선 탈세 고객 정보를 확인해 세금을 추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객이 위험을 느끼고 스위스 은행으로부터 자산을 빼내 다른 나라 은행들로 옮긴 것도 모두 추적할 수 있는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해당 은행을 기소하지 않는 대신 벌금을 물리되 은행이 비밀 고객의 정보를 많이 제공하면 줄여주고 적게 제공하면 많이 부과하는 '실적주의'도 적용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시작된 이 '스위스 사면 프로그램'에 응하겠다고 밝힌 스위스 은행이 모두 106개에 이를 정도로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고 블룸버그닷컴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매주 1-2개 은행이 미 법무부와 불기소협정을 맺고 있어 올해 들어 지금까지 이 협정을 맺은 은행이 41개에 이르며, 추가로 40개 정도가 올해 안에 협정을 맺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
물론 자발적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이 프로그램 시작 직전인 2012년 스위스 최고(最古)인 27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베겔린 은행이 미국 납세자들의 탈세를 도운 혐의로 임원 3명과 함께 기소돼 그 여파로 문을 닫아야 했다.

그에 앞서 스위스 은행에 대한 미국 검찰의 공세가 시작된 2009년엔 스위스 최대은행인 UBS가 미국 법무부와 소송전을 벌이다 결국 이듬해 미국인 고객 4천450명의 계좌내용을 법무부에 넘겨야 했다.

당시 미국 국세청은 탈세한 개인들에 대해 탈세자사면프로그램을 가동, 이들로부터 얻은 정보로 은행 직원들을 기소하는 등 스위스 은행들을 압박하기도 했다.

미국 검찰은 미국 국세청이 2009년부터 탈세자들을 대상으로 한 사면프로그램을 통해 확보한 정보(체납세금 추징, 벌금 등으로 70억 달러 환수)에 스위스 은행 대상 사면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탈세 정보를 보강해 부유층 탈세자들에 대한 추적을 스위스 바깥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올해 스위스 은행 대상 사면프로그램이 대체로 마무리되면, 미국 검찰은 특히 싱가포르와 이스라엘 은행들로 눈을 돌릴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미 싱가포르 자산관리회사를 이용한 납세자들이 검찰의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캐럴라인 시라올로 미 법무차관보는 이 매체에 "분명히, 싱가포르는 우리가 들여다볼 사법권역중 한 곳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은행들 역시 미 법무부가 특별히 주시하고 있는 곳들이다.

지난해 제임스 콜 당시 법무부 부장관은 이스라엘 은행들에 있는 은닉계좌들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실제로 이미 이스라엘 레우미 은행이 미국 납세자들의 재산은닉을 도운 사실을 인정하고 4억 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미 법무부와 불기소협정을 맺은 스위스은행 41개의 '자백'에 따르면, 이들 은행의 많은 고객이 자신들의 돈을 스위스 밖의 조세회피처에 설립된 유령회사들의 돈으로 위장했는데, 18개 은행은 리히텐슈타인에, 15개 은행은 파나마에, 11개 은행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4개 은행은 홍콩에 자산을 거치했다.

스위스은행들이 한마디로 고급 탈세 정보를 "은쟁반에 받쳐" 미 법무부에 바치고 있는 셈이라고 블룸버그는 한 변호사의 말을 인용,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y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