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메르켈과 이민
독일만큼 이민 논쟁이 치열했던 나라도 드물다. 1980년대부터 20여년간 독일이 과연 이민 국가인지를 두고 끊임없는 논쟁이 벌어졌다. 터키계 이민자가 인구의 5%를 넘으면서 벌어진 상황이었다. 게르만 혈통주의를 고수한 정치인들은 독일이 절대 이민 국가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보수와 진보가 이념적 스펙트럼이 아니라, 이민 찬반에 따라 구분된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이러는 사이에 독일에선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이 심각해지고 외국인 노동자는 늘어만 갔다. 산업계의 이민 개방 요구가 갈수록 거세졌다. 결국 독일 정부는 2005년 이민법을 제정하고 이민청을 신설했다.

지금 독일은 공식적으로 이민의 나라라고 밝힌다. 현재 독일의 이민자 수는 전체 인구의 12%, 이민자의 2·3세나 독일계 귀환자를 포함하면 인구 전체의 18%나 된다고 한다.

독일 이민정책에 가장 관심을 기울인 정치인은 바로 앙겔라 메르켈 총리다. 그는 2005년 취임하면서 이민 정책을 집중적으로 폈다. 직종에 관계없이 이민의 문호를 개방하고 독일인과 똑같은 복지 혜택을 부여했다. 이들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도 구축했다. 지난해엔 외국계 자녀에 대한 이중국적까지 허용했다. 기업에서 고용주가 원하면 이민을 받아들인다는 전략도 폈다. 이민 정책은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라는 게 메르켈의 생각이다.

엊그제 메르켈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독일에 망명을 신청한 80만명의 시리아 난민들을 모두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의 민족주의 정당에서 거세게 반발하고 있지만 메르켈은 오히려 격한 어조로 그들을 비판하고 있다.

이제 메르켈은 유럽연합(EU) 국가들에도 이민과 난민 정책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그는 난민 분산 수용에 회원국들이 합의하고 망명 허용을 위한 공동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난민 정책에 소극적인 영국 정부에도 은근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난민 문제는 EU가 직면한 그리스사태보다 더 중대하고 심각한 ‘도전’이라고도 했다.

2년 전 60회 생일에 위르겐 오스터함멜 콘스탄츠대 교수를 초청해 강연을 들었던 메르켈이다. 글로벌화의 역사의 저자인 오스터함멜은 세계는 갈수록 가까워진다며 세계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역사 학자다. 메르켈이 유럽의 미래 구도하에서 이민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한국도 이제 이민에 대한 인식 대전환이 필요 할 때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