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공대의 역사는 180년이다. 아리스토텔레스 공대도 100년 가까운 전통이다. 그리스 공대가 갖는 아우라가 있다. 졸업생들은 1950년대 이후 특히 많이 배출됐다. 이들은 마침 불어닥친 자동차시장의 확대에 편승해 새 기계를 설계하고 조립했다. 1960년대 후반에 이미 수십 개 기업들이 트럭과 승용차, 버스를 생산하고 시판했다. 독일 기업에 버금가는 주요 엔진을 개발했다는 회사도 나왔다. 남코(namco)처럼 자동차를 수출해 떼돈을 버는 기업도 출현했다. 트로이 목마를 제작한 그리스인들의 저력이 세계에 울려 퍼졌다. 물론 자동차만이 아니었다. 선박 화학 섬유 제약 시멘트 등 모든 산업에서 그리스인들의 기술은 남달랐다. 비행기나 위성을 제작해 보겠다는 기업들도 눈에 띄었다.

좌파정권이 제조강국 허물어

1960~70년대 그리스 산업은 살아 있었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평균 7%를 넘었다. 일본에 이은 ‘제2의 경제 기적’을 이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기술로 유명한 에트루리아인들의 기를 꺾어 보자는 그리스 장인들의 의지가 넘쳤다.

하지만 1981년 출범한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정권은 이런 분위기를 여지없이 쓸어냈다. 하버드대 출신에 버클리대 교수까지 지낸 경제통이었던 그가 집권하면서 내세운 건 시장 경제가 아닌 가부장적 경제(paternalistic economy)였다. 그는 웬만한 기업들을 국유화하고 제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단행했다. 철강 금융 선박 등 모두 12개 업종이 국유화 바람을 탔다. 주요 조선소나 시멘트·알루미늄 공장은 각종 규제로 관료들의 간섭을 받았다. 심지어 환경 오염을 이유로 아테네에는 공장 설립 제한을 뒀으며 아테네 시내에 들어오는 자동차 수도 통제했다. 다른 그리스 도시들도 이를 따랐다.

파판드레우는 대신 그리스가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1981년)한 만큼 비교우위론에 입각해 그리스의 장점인 농업을 키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농민들에게 연금을 제공하고 각종 복지혜택을 듬뿍 안겼다. 사실 자신에게 표를 찍어준 대가였다.

제조업 망가지면 회복 힘들어

이렇게 그리스는 제조업을 버리고 다시 관광이나 올리브기름을 팔아 먹고사는 국가로 바뀌었다. 물론 경제는 급전직하했다. 1980년대부터 국가 부채는 갈수록 늘어났다. 1983년 제조업 제품에서 수입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30%였지만 1992년에는 절반 이상이나 됐다. 하지만 그는 걸핏하면 EEC를 떠난다고 하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탈퇴한다고 했다. 1991년 잠시 들어선 우파 민주당 정권이 이들 국유화 기업을 민영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열처리나 광업 등 60여개 기업이 매물로 나왔지만 세계 모든 기업들이 이미 그리스의 제조역량에 회의를 품은 뒤였다. 유럽연합(EU)에 가입한 2000년대부터 유로화가 가져다주는 화폐착시와 저금리에 현혹돼 제조업 부활의 마지막 기회조차 날려버렸다.

제조업의 방기(放棄)가 낳은 ‘잃어버린 30년’이다. 그만큼 제조업은 한 번 망가지면 회복하기 힘들다. 5년 전부터 그리스를 탈출(?)한 이민자만 2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은 미국과 유럽의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조국을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도 아테네 공대 출신이다. 제조업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지만 거꾸로 행동한다. ‘그리스 패러독스’다. 다른 한쪽에선 ‘코리안 패러독스’가 자라나고 있다.

오춘호 논설위원·공학博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