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기 "남북·외교 정책 등 65년 전 실패 되풀이 말아야"
“6·25전쟁을 비롯해 한반도에서의 여러 전쟁은 모두 외세에 휘둘려 일어났습니다. 특히 6·25전쟁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으로 빚어진 동족상잔이란 점에서 너무나 처참한 비극이었죠. 그 시기를 둘러싼 정세를 냉철히 짚어봐야 합니다.”

이세기 전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장관(79·사진)은 최근 서울 청담동 한중친선협회 사무실에서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현재 한중친선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 전 장관은 지난 25일 펴낸 신간 ‘6·25전쟁과 중국’에서 다소 도발적 주장을 펼친다. “6·25전쟁은 옛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신생 강자로 떠오른 마오쩌둥을 제압하기 위해 일으킨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며, 이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스탈린”이라는 것이다. 6·25전쟁의 원인을 옛 소련과 중국 간 갈등에 초점을 맞춰 재조명한 해석이 국내에서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전 장관은 “6·25전쟁을 단순히 국내 좌·우익, 미국과 옛 소련 간의 갈등으로만 좁게 보면 큰 오산”이라고 강조했다. “스탈린이 한반도에서 중국과 미국이 직접 부딪치게 해서 두 나라가 우호 관계를 맺을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미국이 아시아에 집중하느라 유럽을 소홀히 한 틈을 타 유럽 내 옛 소련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려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 “남침하겠다는 김일성의 계획을 50여 차례 묵살했다가 1950년 초 전격 승인하고, 1950년 6월27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6·25전쟁에 유엔군 투입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에 옛 소련 대표가 불참해 미국을 필두로 유엔군이 참전하게 된 것도 모두 스탈린의 계략이었다”고 전했다.

이 전 장관이 중국과 옛 소련에 관심을 두게 된 건 1978년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을 때였다. 당시 일본엔 국내에선 구하기 힘든 사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스탈린은 마오쩌둥을 매우 경멸했고, 혁명의 열기와 함께 녹아 버릴 가짜 공산주의자란 뜻으로 ‘마가린 공산주의자’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아울러 “특히 만주지역 지배권을 마오쩌둥에게 내주고, 그가 번번이 옛 소련과 대등한 위치에 서려 하면서 중국에 대한 스탈린의 적개심은 매우 강해졌다”며 “남침을 노리는 김일성은 스탈린에겐 자신의 대외전략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더없이 좋은 하수인이었다”고 덧붙였다.

6·25전쟁의 원인 관련 연구에 천착한 것은 개인적 이유도 컸다. 황해도 개성 출신인 이 전 장관은 6·25전쟁 발발 후 가족과 함께 부산에서 피난민 생활을 하며 전쟁이 낳은 가난의 슬픔을 겪었다.

이 전 장관은 “한반도는 여전히 ‘열강의 체스판’이며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미국과 중국을 양대 축으로 유럽연합(EU)과 러시아, 일본 등 각 지역 모두 파워를 갖는 다극화 체제에서 남북문제 해결과 외교 정책 변수는 더욱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또 “6·25전쟁 전후로 북한은 옛 소련과 중국에 의존했고, 한국은 대외 상황조차 제대로 몰랐다”며 “아무런 외교력이 없던 65년 전을 되돌아봐야 다시는 그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