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안팎서 위협 직면…오바마와 차별화 득실계산 아직 일러

미국 대선판의 변동성이 점점 커지는 분위기다.

그동안 유지돼 온 '힐러리 대세론', '힐러리 독주체제'가 흔들리는 모습이 확연한 탓이다.

2016년 대선이 아직 1년4개월 이상 남은 점을 고려하면 향후 판도가 어떻게 굴러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형국이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최근까지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야를 통틀어 압도적 1위 자리를 확고하게 지켜왔다.

공화당 잠룡들과의 지지율 격차가 더블 스코어 이상 벌어졌고 민주당 내에서는 누구도 감히 함부로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근 구도가 급변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표적 외교실패 사례로 꼽히는 2012년 리비아 벵가지 미 영사관 피습 사건과 국무장관 재직 중 개인 이메일 사용 논란, 이른바 '이메일 스캔들'에 대한 공화당의 계속된 공세가 발목을 잡는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내부의 도전까지 겹치면서 전략을 새로 짜야 할 판이다.

가장 신경이 쓰이는 대목은 바로 무명에 가까웠던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의 급부상이다.

무소속이면서도 민주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한 샌더스 의원은 보스턴 서폭대학교가 지난 11∼15일(현지시간) 경선 첫 프라이머리가 열려 '대선풍향계'로 통하는 뉴햄프셔 주 유권자 500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31%의 지지를 얻었다.

41%를 얻은 클린턴 전 장관과 격차가 10%포인트에 불과했다.

샌더스 의원은 이달 초 위스콘신 주 밀워키에서 실시된 비공식 예비투표(스트로폴)에서도 41%를 기록해 49%인 클린턴 전 장관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선거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여론 흐름을 토대로 "샌더스 의원의 부상이 클린턴 전 장관에게 점점 더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민주당의 선거전략가 브래드 배넌은 미 언론 인터뷰에서 "뉴햄프셔 유권자들이 아직 결정을 하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는 상황이다.

어떤 물건을 사기 전에 다른 가게도 돌아보고 싶어하는 것과 같다"면서 "이제는 클린턴 전 장관이 샌더스 의원의 부상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동안 언론에 별로 조명을 받지 못했던 공화당 잠룡들도 점점 목소리를 키우면서 실질적으로 클린턴 전 장관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41대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의 차남이자 43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지난 15일 출사표를 던짐과 동시에 대선판의 한 축이 '부시-클린턴 가문 대결' 구도로 짜인 상태라 이래저래 클린턴 전 장관으로서는 달가울 리 없는 상황이다.

세간의 이목을 끄는 이 구도가 자칫 후발 주자이자 지지율 면에서 한참 뒤떨어지는 부시 전 주지사만 키워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안팎의 위기 상황을 맞아 클린턴 전 장관은 확실한 '자기 색깔'을 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전략적 차별화로 보인다.

그동안 중산층과 소외계층 대변자를 자임하며 오바마 대통령과 '코드'를 맞춰 온 클린턴 전 장관은 다자간 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관련해선 오바마 대통령과 선 긋기를 하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클린턴 전 장관은 18일 랄스톤 리포트 인터뷰에서 자신이 현재 상원의원이라면 현 상태의 무역촉진협상권(TPA) 부여 법안에는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는 "무역조정지원제도(TAA)를 얻어낼 수 있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는 한 찬성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속협상권'으로도 불리는 TPA는 행정부가 타결한 무역협정에 대해 미 의회가 내용을 수정할 수 없고 오직 찬반 표결만 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고, TAA는 TPP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이직 등을 국가에서 지원하는 제도다.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은 지난주 하원에서 TPA-TAA 안건의 패키지 처리가 무산된 후 고육지책으로 TPA 부여 법안만 분리해 18일 하원에서 처리한 뒤 상원으로 넘긴 상태다.

상원이 이를 승인하면 TPP 협상을 예정대로 추진할 수 있고 반대로 거부하면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클린턴 전 장관이 외견상 오바마 대통령보다는 TPP에 반대하는 민주당 상원의원들의 편을 든 것이다.

이는 대선을 앞두고 전통적 지지기반인 노동계 표를 의식한 행보로 보인다.

야당인 공화당이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의 '친정'인 민주당 의원들이 TPP에 제동을 거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모두 내년 대선 및 상·하원 선거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다만, 대선주자인 클린턴 전 장관 입장에선 오바마 대통령과의 전략적 차별화가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선거 전문가들은 여야 대선후보들의 지지율 변화에 따라 향후 선거판이 출렁이는 것은 물론, 오바마 대통령과의 관계설정 등 클린턴 전 장관의 전략적 행보도 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워싱턴연합뉴스) 심인성 특파원 sim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