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책의 날 앞두고 되새기는 '돈키호테의 교훈'
4월23일은 ‘세계 책의 날’이다. 이 날은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와 영국이 낳은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사망한 날이다. 1616년 4월23일 사망한 두 작가를 기려 유네스코는 이 날을 세계 책의 날로 지정했다.

둘은 인류가 낳은 위대한 작가였다. 두 작가는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다.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발표한 것은 1600년,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발표한 것은 5년 뒤인 1605년이었다. 이 둘은 새로운 인간형을 창조해냈다. 19세기 러시아 소설가 투르게네프는 현실감각 없이 밀어붙이는 사람을 ‘돈키호테형 인간’, 고민만 하고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을 ‘햄릿형 인간’이라고 구분했다.

지난 3월 세르반테스의 유해가 400년 만에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수녀원에서 발견됐다. 발굴단은 올 1월 이 수녀원의 지하 납골당에서 미겔 세르반테스의 머리글자인 ‘M.C.’가 새겨진 관조각을 발견했고, 3월17일 “역사적·고고학적·인류학적 정보에 근거해 발견된 유골 중 일부가 세르반테스의 것임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세르반테스의 후손이 없는 관계로 유전자 감식을 통한 확인이 어려운 점 등은 논란거리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논란도 진행형이다. 일종의 음모론으로 셰익스피어가 허구의 인물이며 원작자가 따로 있다는 주장이다. 제17대 옥스퍼드 백작을 원작자로 보는 ‘옥스퍼드파’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결국 위대한 작가는 작품을 통해 말할 뿐이다. 세르반테스의 유해 발견이나 셰익스피어 생애의 진위 여부를 떠나 그들의 작품은 여전히 살아 숨쉴 것이며 시대에 따라 다양한 메시지를 전해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작품 속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지 않는다. 독자들이 작품을 통해 자기의 삶을 비춰보며 성찰하도록 만든다. 작품들이 시대를 초월해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절찬리에 공연되는 이유다.

돈키호테는 과대망상의 아이콘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현실과 이상의 불일치라는 관점에서 돈키호테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풍차거인처럼 이길 수 없어 보이는 상대 앞에서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주저 없이 돌진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꿈과 이상이라는 인간 발전의 원동력을 새삼 깨닫게 한다. “위대하신 여러분. 장차 이룩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내가 미친 거요,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미친 거요”라는 돈키호테의 외침은 거대한 현실 앞에 도전할 용기마저 상실한 젊은 세대에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저성장, 빈부격차, 고령화, 저출산, 청년실업 등 절망적인 말들이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인도의 불경 ‘수타니파타’에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부처의 말씀이 나온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말고 자유를 찾아 주관대로 행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삶에 지친 우리에게 무슨 메시지를 주고 있을까. 데카르트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세르반테스는 “행동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오늘 이 순간, 세르반테스는 꿈을 잃고 무기력해진 현대인에게 실패를 두려워말고 꿈과 자유를 찾아 풍차를 향해 돌진하라고 말하지 않을까. 이상과 신념에 미쳐 미래를 만들어가는 ‘돈(crazy)’ 키호테가 될 것인가, 현실에 안주해 꿈을 잊고 사는 ‘돈(done)’ 키호테가 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박희권 < 駐스페인 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