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이 4일 열린 미국 LPGA투어 ANA인스퍼레이션 3라운드 17번홀(파3)에서 아이언 티샷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세영이 4일 열린 미국 LPGA투어 ANA인스퍼레이션 3라운드 17번홀(파3)에서 아이언 티샷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셸 위는 실력에 비해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

2007년 18세10개월의 나이로 미국 LPGA투어 최연소 메이저 챔피언이 된 모건 프레셀(27·미국)은 이렇게 말했다. 크래프트나비스코챔피언십(현 ANA인스퍼레이션) 우승컵을 거머쥔 뒤였다. ‘싸움닭’이라는 별명이 붙은 게 이때부터다. 그는 당시 아마추어 골프 슈퍼스타였던 경쟁자 미셸 위를 견제하는 ‘까칠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2005년 US오픈에서 한국의 김주연에게 우승컵을 내준 직후에는 울음을 터뜨리며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욕심이 과했던 탓일까. 프레셀은 ‘역전의 명수’ 김세영(22·미래에셋)과의 맞대결에서 4타 차로 완패했다. 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미션힐스CC 다이나쇼어토너먼트코스(파72)에서 열린 ANA인스퍼레이션 3라운드에서다. 스테이시 루이스(30·미국)와 브리타니 린시컴(30·미국)까지 가세한 미국 삼총사의 포위망이 좁혀올수록 김세영의 샷은 더욱 불을 뿜었다. 멘탈이 달랐다.

◆스스로 무너진 미국 삼총사

프레셀은 이날 1타를 줄이는 데 그쳤다. 같은 조에서 경기한 김세영은 3타를 더 줄이며 미국 선수들의 집중 견제를 뿌리쳤다. 중간합계 10언더파 206타. 2위 루이스와 3타 차, 프레셀과 린시컴이 포함된 3위 그룹과는 4타 차 선두다.

드라이버와 아이언, 퍼팅의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졌다. 드라이버 티샷이 긴 러프로 들어가면 강한 다운블로 아이언샷으로 공을 빼내 그린에 올렸다. 그린 에지 주변으로 밀린 세컨드 샷은 침착한 퍼팅으로 홀에 굴려 넣어 파세이브를 만들었다. 헤드페이스가 살짝살짝 열리면서 루이스에게 한때 선두를 내준 것은 옥에 티. 하지만 김세영은 16번홀에서 그림 같은 프린지 퍼팅을 성공시킨 데 이어 17번홀에선 3m짜리 버디까지 낚아내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철녀’ 루이스는 제풀에 꺾였다. 15번홀 티샷 실수 이후 벙커에서 시도한 세컨드 샷은 블레이드샷(일명 토핑)이 되면서 온그린에 실패했다. 루이스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다. 평정심을 잃은 루이스는 17번홀에서도 보기를 범했다. 김세영과는 3타 차로 벌어졌다.

프레셀은 차곡차곡 버디를 낚으며 추격의 고삐를 조였지만, 스윙 템포가 빨라지면서 샷이 엉켰다. 16번, 17번홀에서 역시 연속 버디를 따내며 추격에 나선 장타자 린시컴(세계랭킹 3위·267야드)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 김세영의 후반 독주를 막지 못했다.

◆박세리 2R 149위로 커트 탈락

박세리(38·하나금융그룹)를 비롯한 코리안시스터스 대다수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생애 통산 4대 메이저 우승)을 꿈꾸며 배수진을 쳤던 박세리는 2라운드에서 중간합계 5오버파를 쳐 149위로 커트 탈락했다. 박세리는 올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에비앙챔피언십에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다시 도전한다.

한국(계) 선수들은 미션힐스의 긴 러프와 좁은 페어웨이, 빠른 그린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재미 동포 제니 신(23·한화)이 5언더파로 6위에 이름을 올린 데 이어 이미향(22·볼빅) 유소연(25·하나금융그룹)이 공동 9위(4언더파)로 경기를 마쳐 체면치레했다.

나머지 한국 낭자들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세계랭킹 2위 박인비(27·KB금융그룹)와 이미림(25·NH투자증권)은 3언더파로 공동 14위에 올랐다. 선두와 7타 차로, 마지막 라운드에서 반전이 벌어져야만 우승권에 다가갈 수 있는 성적이다. 대회 첫날 LPGA 최다 라운드 연속 언더파 타이기록(29라운드)을 세운 리디아 고(18·뉴질랜드)는 2라운드에서 안니카 소렌스탐(45·스웨덴)의 기록을 넘어서는 데는 실패했다. 3라운드에서도 퍼팅 난조 탓에 2오버파로 부진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