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갤럭시가 일본에서 안 팔리는 이유 … 국중호 일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
갤럭시는 일본에서 5등

일본시장에서는 한국제품이 억울할 정도로 푸대접을 받기도 한다. 하기야 한국도 ‘반일감정’이란 일본 알레르기가 있으니 사돈 남 말하기엔 한편으로 켕긴다. 켕기더라도 갤럭시를 예로 들어 몇 마디 참견해 볼까 한다.

지난해 3분기(7~9월) 세계시장에서 삼성 스마트폰은 1등(23.7%, IDC조사)을 기록했다. 2등의 애플 아이폰(11.7%)을 두배 이상 따돌렸다.

그런 삼성이 일본시장에선 초라하다. 아이폰이 압도적인 1등으로(63.3%), 갤럭시(4.2%)보다 15배나 많이 팔리고 있다. 갤럭시는 샤프, 소니, 교세라의 일본 스마트폰에도 뒤져 5등이다. 참패를 당하는 이유가 삼성전자에만 있다면 ‘너네 잘못’이라며 한 마디 쏘아붙이면 되니 굳이 무어라 할 건더기도 없다. 한일간 정치·역사·문화 요인이 갤럭시를 맥 못추게 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나라 국가품격

어느 한 기업의 품격이 그 나라의 품격을 넘어서기는 지난한 일이다. 강성 우익 이미지의 아베정권 하에서 한국의 품격에 자존심 상하는 역풍도 일고 있다. 일본에서 우리나라 국가품격 이미지는 프레미엄이 붙어 있기는커녕 마이너스에 가깝다.

박근혜 정권도 날이 선 이미지로 비치는 까닭에 갤럭시를 비롯한 한국상품 팔기가 무척 어렵다. 삼성이 일류상품을 내놓아도 일본인들이 열광하며 달려들 분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삼성의 이미지가 국가체면을 살려주기도 한다. 일본인들이 갤럭시를 사지 않고 한국을 한수 낮게 보면서도 세계에서 활약하는 삼성은 ‘대단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정치가의 경거망동이 때론 겉잡을 수 없는 경제손실로 이어진다.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방문 이후 잘 나가던 한류붐도 한물 가버렸다. 일본을 자극시켰다는 정치적 쾌감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일본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은 낭패가 커졌고 한국인을 보는 눈은 더욱 삐딱해졌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처럼 양국간에는 ‘가격 대비 성능’이란 경제경영의 영역을 넘어선 갈등 요인이 가로놓여 있다. 기업 홀로 발버둥치기에는 너무도 벅차다. 미국보다 한국의 국가품격이 뒤지고, 일본인들이 아이폰의 첫 시류를 타고 일단 애플팬이 된 다음인지라 갤럭시의 성능이 좋아도 새로이 큰 감흥을 보이지 않는다.

소니의 추락과 삼성의 반격

불과 십여년 전만해도 ‘그건 소니니까(It’s a Sony!)’ 하며 떵떵대던 소니의 추락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아베노믹스로 일본의 경기가 살아난다고 하지만, 자동차나 기계산업 등 제조업 부문이 잘 나가고 있는 것이지, 일제 스마트폰은 이제 세계시장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일본시장에서 각각 10% 전후(2014년)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샤프나 소니의 스마트폰은 다른 나라에선 눈씻고 찾기도 어렵다. 중국의 샤오미(Xiaomi)나 레노버(Lenovo)와 같은 기업이 저가격으로 삼성이나 애플을 위협하면서 일본 스마트폰의 세계시장 경쟁력은 거의 사라졌다. 발 빠른 디지털 시대에 소니를 비롯한 일본의 전기기업은 종적 폐쇄성으로 접근하려 한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일본인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지라 아이폰을 갤럭시로 쉽게 바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속이 타겠지만 일본내에선 장기전에 강해야 한다. 삼성은 올 3월 초 아이폰6보다 앞선 갤럭시S6, S6엣지 모델을 선보였다.

앞으로 한일 국가 대립을 피하면 일본에서 갤럭시 팬은 늘어날 것이다. 소프트뱅크의 아이폰 선점이익도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에 가입자를 뺏긴 기존 통신업체(NTT와 au)는 시장 점유율을 만회하기 위해 갤럭시 신모델도 선택했다. 갤럭시를 비롯한 한국상품의 일본시장 진출 확대는 한국의 위상을 높여줄 것이다.

남 좋은 일 시키는 한일대립

한미중이 일본의 정교함을 당할 수 없기에, 삼성이나 애플이 시장 수요를 늘려가든 중국의 샤오미나 레노버가 선방하든 고급 부품이나 기계장비는 일본이 강점을 발휘할 것이다. 기름 묻히는 아날로그 기계산업을 조역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국인의 감각이다.

일본인들은 한 가지 일을 하면서 세상 일에 도움이 되는 역할이라면 뿌듯함을 느낀다. 그렇게 자부심을 갖는 일본인을 포용해 ‘디지털 한국, 아날로그 일본’이란 한일 분업과 융합을 유도해야 할 텐데 국가 사이가 틀어져 있어 손해가 막중하다.

디자인 잘하기로 유명한 애플의 까다로운 요구에 답해줄 수 있는 곳도 일본 기업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허기진 바보처럼 눌러앉아 일하기(Stay hungry. Stay foolish.)’로 임했다. 일본은 그런 애플에 ‘바보처럼 눌러앉아 함께 일하기(Stay foolish. Stay together.)’로 응하는 인상이다.

아이폰 핵심 부품의 상당 부분이 일제이기에 아이폰이 잘 나가면 일본기업에도 좋다. 우리가 일본과 대립하고 척을 질수록 애플을 유리하게 하고, 일본은 아이폰 쪽으로 더 기울어질 것이다. 실제로 히타치, 도시바, 소니의 액정사업을 통합한 재팬디스플레이(JDI)는 이시카와(石川) 현에 새 공장을 지어 아이폰용 패널을 2016년부터 공급할 예정이다.

태극 음양의 포용정신

한국에선 일본을 비난하면 당연히 여기고 칭찬하면 비난받는다. 굳이 비난을 무릅쓰고 말하면, 좋은 기계장비를 대주는 일본기업에 고마움을 느껴도 어디 덧나지는 않는다. ‘어이, 기름쟁이, 이것 좀 해 봐!’하는 태도가 아니고, ‘당신(일본)이 만드는 기계 덕분에 우리는 좋은 제품을 만듭니다’ 라는 아량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일까요?

한 우물 파는 외골수 지향의 일본인들인지라 그 외골수마저 부정당하면 전체를 부정당한다고 여긴다. 어차피 우리가 기계장비 기술에서 일본에 당할 수 없다면, ‘좋은 기계 만들어 달라’며 잘 띄워주고 ‘함께 해보자’며 그들을 활용하는 전략이 현명할 것이다.

국가대표 축구 유니폼이나 응원복장이 한국은 붉은색, 일본은 푸른색이다. ‘정열 한국, 침착 일본’이다. 태극기의 태극 문양이 붉음과 푸름의 합치다. 태극 음양의 포용정신이 있어야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일 것이다.

남을 감싸며 우리도 이젠 내실을 다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남 탓 하기에 앞서 저 자신도 품격다지기를 하고 있는지 되돌아 보아야겠다. 국민 각자의 품격이 국가품격으로 이어질 터이니까요.

국중호(게이오대 특임교수, 요코하마시립대 교수)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