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난이 지속되는 가운데 전세가율이 높은 단지를 중심으로 보증부월세(반전세)로 계약하는 세입자가 늘고 있다. 서울 잠실동 중개업소에 나붙은 매물 목록. 한경DB
전세난이 지속되는 가운데 전세가율이 높은 단지를 중심으로 보증부월세(반전세)로 계약하는 세입자가 늘고 있다. 서울 잠실동 중개업소에 나붙은 매물 목록. 한경DB
최근 결혼한 직장인 김모씨(34)는 경기 화성시 병점동의 한 아파트(전용 75㎡)를 보증부월세(반(半)전세)로 얻었다. 보증금 9000만원에 월세 45만원 조건이다. 애초 전세를 찾았으나 이곳 아파트 매매 시세(2억원)가 전세가(1억8000만~1억9000만원)와 큰 차이가 없는 것을 알고 생각을 바꿨다. 은행 담보대출이 붙어 있는 집이 대부분이어서 자칫 경매 때 전세금을 떼일 가능성이 걱정됐다. 그는 “혹시 모를 경매 등에 대비해 반전세로 보증금을 줄이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수도권 전세난이 계속되면서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반전세 세입자가 늘고 있다.

반전세는 보통 거액의 전세보증금을 마련하기 힘든 서민층이 주로 이용했지만 전세가율이 올라가면서 이른바 ‘깡통 주택’을 염려한 중산층 세입자 중 일부가 자발적인 월세 세입자로 돌아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세가율 80% 속출…반전세 전환

대출 안 낀 집 찾기 힘들고…보증금은 집값 육박하고…"전세금 떼일까 걱정"…반전세 찾는 세입자들
반전세 선호 지역은 수도권에서 전세가율이 높은 화성 수원 등이 우선 꼽힌다. 화성시 병점동은 전세가율이 90%에 근접하는 아파트가 많다. 병점동 ‘느치미마을 4단지’ 전용 84㎡는 매매가 2억4000만원, 전세가 2억1000만~2억2000만원으로 전세가율이 90% 안팎이다.

이인숙 광장공인 대표는 “최근 전세 대신 반전세를 알아보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며 “반전세 매물이 2~3건에 불과해 수요를 맞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매전문회사 지지옥션의 강은 팀장은 “아파트가 경매에서 한 번 유찰되면 감정가의 80%(서울 기준)까지 최저가가 내려온다”며 “전세가율이 높은 아파트는 그만큼 전세보증금을 떼일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반면 반전세는 보증금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아파트가 여러 번 유찰되지 않는 이상 전세보증금을 잃을 위험이 작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서울과 경기의 지난달 아파트 평균 낙찰가율은 각각 87.8%와 88.4%다. 반전세 보증금이 보통 시세의 50%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 안전한 편이다. 월세 비용을 세액공제받을 수 있는 점도 반전세 아파트의 장점으로 꼽힌다.

인근 화성시 능동에 있는 ‘자연앤데시앙’에서도 반전세 물건을 찾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게 주변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이 단지 전용 59㎡ 매매가는 2억5000만원, 전세가는 2억2000만~2억3000만원 정도다. 반전세는 보증금 1억4000만원에 월세 30만원 정도로 시세가 형성돼 있다.

◆‘깡통 주택’ 가능성 차단

집에 거액의 은행 담보대출이 붙어 있는 경우 전세가율이 낮아도 반전세로 돌아서는 사례도 있다. 사업가 박모씨(45)는 중학교에 들어간 자녀의 학교 때문에 서울 압구정동 한 아파트(전용 157㎡)에 반전세로 들어갔다. 중개업소에서 확인한 같은 평형 전세 매물은 전세보증금이 8억5000만원(매매가 20억원) 선이었지만 8억7000만원가량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었다.

박씨는 “전세보증금과 채무액을 합하면 17억원을 넘어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갔을 때 집주인의 숨겨진 채무와 세금 체납액까지 고려하면 보증금을 떼일 위험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율이 계속 상승하는 추세여서 반전세 수요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팀장은 “집주인도 수익률이 더 높은 반전세를 선호하기 때문에 반전세가 주요 임대 형태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