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새 정부가 긴축 반대 드라이브를 걸면서 독일의 선택에 갈수록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구제금융 최대 채무국 그리스의 운명은 최대 채권국 독일이 가를 것이라는 지적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독일은 여전히 긴축 코드를 고집하며 요지부동이다.

이런 가운데 그리스 정부에 천군만마와 같은 낭보는 뜻밖에 미국에서 전해졌다.

화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일 CNN 방송 인터뷰에서 "불황 한복판에 있는 나라를 계속 쥐어짜기만 해선 안 된다"고 했다.

"어떤 시점에는 국가 부채를 해소하기 위한 성장전략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다.

그리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와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의 유럽 로드쇼에 탄력을 붙이는 희소식이라는 관전평이 나왔다.

이들 투 톱의 동분서주 역시 프랑스와 영국 등 주요국의 긴축 반대 지지로 결실을 보고 있다.

독일의 긴축 반대 전선에서 유사한 처지의 이들 국가는 한 편임을 확인했다.

무조건적 부채 탕감이나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없다거나 러시아의 지원은 받지 않는다는 그리스 정부의 언명도 잇따르고 있다.

반대 세력의 역공을 막고 투자자들의 불안을 달래려는 목적이다.

내쳐 바루파키스 장관은 새로운 부채 조정 방안을 내놓고 재협상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명목 경제성장률에 연동한 채권을 유럽연합(EU)의 구제금융과 교환하고, 무기한 채권을 유럽중앙은행(ECB)이 보유한 그리스 국채와 바꾸자는 안이다.

그리스 전체 정부 부채 3천200억 유로 중 이들 몫은 각기 1천420억 유로, 270억 유로 규모이다.

이 가운데 EU 구제금융 1천420억 유로는 2013년 7월 상설 구제 금융기구로 자리 잡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이 채권으로 갖고 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헤어컷(채무 탕감) 효과를 낼 것이라는 해설이 따랐다.

연동 채권 금리가 형식논리로 따지면 마이너스까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방안은 그러나 EU, 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트로이카 채권단과의 이달 말 시한 협상을 대신한 5월 말 시한의 재협상 제안에 이은 2탄 성격으로, 그리스에 재협상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그리스의 재협상 공세에 맞물려 트로이카 협상단은 무력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도 없애기를 바라고 ECB와 IMF도 발을 빼겠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있어서다.

하지만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부채 탕감은 안 되고, 경제 개혁은 지속돼야 한다는 원론을 되풀이하며 상황을 주시하고만 있다.

트로이카 협상단 무용론에도 마뜩찮은 내색만 비칠 뿐 무미건조한 반응이다.

무엇보다 긴축 정책의 키를 쥔 메르켈 총리나 쇼이블레 장관은 그리스의 움직임에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때를 기다리며 (재)협상의 계기를 잡아나가려는 분위기가 읽힌다.

독일이 이끈 유로존의 긴축 정책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175%, 실업률 25%라는 그리스의 피폐한 오늘로 이어졌다는 평가에도 애써 눈길을 주지 않는 모습이다.

이런 평가는 과거 녹색당의 '간판'이었던 요슈카 피셔 독일 전 부총리 겸 외무장관이 최근 한 매체 기고문에서 메르켈 긴축 정책의 파산을 선고하며 특별히 주목받았다.

피셔 전 부총리는 "독일의 많은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유로 위기는 끝났다고 자신했지만, 이것이 또 다른 실수였음을 우리는 안다"면서 "시리자(그리스 집권 급진좌파연합)의 승리 이전부터 긴축 정책은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을 높이고 디플레이션과 실업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장 없이는 구조 개혁도 없다"면서 "이제 문제는 독일 정부가 이를 수용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언제 수용할 것이냐이다"라고도 했다.

그는 평소에도 유럽통합주의자로서 유럽의 경제난 국가들을 중심으로 신흥 국가주의가 발호하고, 유럽 내에서 정치적 갈등과 위기가 증폭될 것을 경고해 왔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2일 그의 주장을 인용하며 "독일이 그리스와의 치킨게임에서 양보해야만 한다"고 썼다.

그리스 새 정부 출범 이후 역동하는 정치 상황에서 메르켈 총리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는 무대는 오는 12일 EU 정상회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 총리도 총리지만 BBC 방송은 ECB가 그리스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며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는 그리스의 처지를 전했다.

ECB는 4일 정책위원회 회의를 열어 그리스 측이 요청한 50억 유로 규모의 긴급유동성지원 심사에 나선다.

그리스는 지난달 140억 유로가 인출되는 '미니 뱅크런'이 일어났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있는데다 협상 국면에서 유동성 압박이 심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ECB의 선택에도 관심이 쏠린다.

(베를린연합뉴스) 고형규 특파원 un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