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윤의 데스크 시각] 집안 싸움만 벌이는 의료계
새해 벽두부터 의료계가 또 싸우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금지’ 규제를 없애겠다고 발표한 것이 계기다.

한의사협회는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의사협회는 반대집회를 각각 열고 정면 충돌했다. 의사들은 “서양의학을 토대로 현대 의료기기를 만들었고, 사용하는 방법을 한의사들이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금지시켜야 한다”며 정부 결정에 강력 반발했다. 반면 한의사들은 “엑스레이 등 영상진단장비는 서양 의학의 전유물이 아니다”며 정부 결정을 적극 옹호했다.

진료 영역 뺏기 ‘의료분쟁’

의료계 내부의 싸움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2000년 의약분업 파동이 대표적이다. 약 조제권을 누가 갖느냐를 놓고 의사들과 약사들이 큰 싸움을 벌였다. 세 차례 파업 끝에 ‘의사가 제약사의 약 이름(상품명)까지 적는 처방전을 쓰고, 약 제조는 처방전에 따라 약사가 하는 것’으로 타협이 이뤄졌다.

의사와 약사들 간에는 적대감이 여전히 팽배하다. 만성질환의 경우 처방전을 다시 사용하자는 ‘처방전 리필제’를 놓고 의사들은 수입 감소 등을 우려해 반대했지만 약사들은 찬성했다.

사후 피임약도 의사 처방을 받도록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의사들과 일반약으로 전환해 약사들이 바로 판매하자는 약사회 주장이 맞섰다.

한의사와 약사 간 싸움도 잦았다. 이른바 한·약 분쟁이다. ‘약사가 한약 조제를 해도 되느냐’가 쟁점이었다. 1993년과 1995년 두 차례에 걸쳐 한의사·한의대생들의 파업과 수업 거부가 이어졌다. 양측은 한약사 제도를 따로 두는 쪽으로 타협했다. 하지만 한약사 시험을 ‘사슴의 뿔은? 정답 녹용’ 같은 쉬운 문제로 냈다는 이유로 한 차례 더 싸웠다.

한의사들 중에는 ‘의사들에게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의사들 중 상당수는 약사들에게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반면 약사들은 ‘정부가 의사와 한의사에게 너무 많이 양보한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피해의식 못 벗어나나

외국자본 유치를 목적으로 한 경제자유구역에서조차 외국 병원·의사들의 진입을 반대하는 것은 의료시장을 ‘제로섬 게임’으로 보기 때문이다. 외국 병원이 들어오면 입지가 줄어들 것이라고 믿는 의료인들이 그만큼 많다. 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때 해외 의료서비스 시장의 문턱을 낮춰달라고 요구하는 사례도 거의 없다. 정보기술(IT) 융합 서비스가 등장하고 차별화된 병원들이 생기면 ‘파이(의료시장 규모)’가 커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의료계에선 찾기 어렵다.

건강보험의 낮은 의료수가에 불만을 쏟아내면서 정작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병원(투자개방형 병원)이 들어서는 것에는 반대한다. 원격진료도 대형병원 쏠림이 심화될 것이라는 이유로 막고 있다.

국내 의료계는 인구 증가나 경제성장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팽창해왔다. 1980년 2만2000여명이던 의사 수는 지난해 11만2000여명으로 5배 가까이 증가했다. 한의사 수도 이 기간 3000여명에서 2만2000명으로 7배 이상 늘었다. 이들이 살아남으려면 해외로 영역을 넓히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한의사가 엑스레이를 쓸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영역 다툼을 할 때가 아니다.

현승윤 중소기업부장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