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크라 사태 개입 일제 비난…푸틴 "수면 부족" 이유 서둘러 떠나

호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러시아 성토장으로 변했다.

정상회의에 참석한 주요국 정상들이 한목소리로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러시아의 태도를 비난하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회의가 마무리되기 전 서둘러 호주를 떠났다.

푸틴 대통령은 스스로 바쁜 일정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회의장 주변에선 푸틴이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호주 국영 ABC방송 등은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의 마지막 날인 16일 오후 3시(현지시간)께 전용기 편으로 브리즈번 공항을 통해 출국했다고 보도했다.

G20에 참석한 회원국 정상들 가운데 가장 먼저 떠난 것으로 의장인 토니 애벗 호주 총리가 회의 결과를 정리하는 공동선언문을 공식 발표하기도 전이었다.

푸틴은 이에 앞서 다른 정상들이 업무 조찬을 하는 시간에 자국 기자들만을 상대로 회견을 열고 조기 출국 사실을 알렸다.

그는 공동선언문이 발표되기 전에 호주를 떠나는 데 대해 조금이라도 잠을 잔 뒤 월요일 출근을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곳에서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날아가려면 9시간이 걸리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도 또 9시간이 걸리며 이후 집으로 가 월요일에 출근해야 한다"며 "적어도 4~5시간은 잠을 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푸틴은 애벗 총리가 조기 출국 이유에 이해를 표시했고 다른 몇몇 정상들과도 작별 인사를 했다며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G20 정상회의에 대해선 "우호적이고 업무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으며 건설적이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평소 지칠 줄 모르는 건강을 자랑하는 푸틴이 부족한 수면을 조기 출국의 이유로 댄 것은 궁색해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회의 기간에 주요국 정상들이 한결같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를 집중적으로 비판한 데 대해 푸틴이 불만을 표시한 것이란 설명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애벗 호주 총리 등은 이날 G20 정상회의 도중 별도의 3자 회담을 한 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회의 개최일인 전날엔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가 악수를 하러 다가온 푸틴 대통령에게 "악수는 하겠지만 당신에게 할 말은 한 가지뿐이오. 우크라이나에서 나가시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없으니 철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맞대응해 냉랭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 행동을 바꾸지 않으면 추가 제재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전 세계를 향한 위협"이라고 비난했다.

의장으로 회의장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고 애쓴 애벗 총리조차 럭비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의 충돌을 일컫는 '셔츠 프런트'라는 호주식 표현을 동원해 푸틴 대통령과 맞설 것을 다짐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cjyo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