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슬쩍 사라진 銀 DLS
지난해 1조9000억원어치가 판매된 은(銀) DLS(파생결합증권)가 자취를 감췄다. 증권사가 신상품을 아예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은값 폭락으로 은 DLS에 돈을 집어넣었다 손실을 본 투자자가 많은 데다 향후 은 가격 전망도 부정적이서다. 그러나 저가 매수 기회를 노리던 투자자들은 “증권사가 자산 가격이 비쌀 때만 상품을 내놓는다”며 허탈해하는 모습이다.

6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발행된 은 DLS는 5종, 49억9000만원어치가 판매됐다. 지난해 월평균 1500억원어치 이상 판매된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다. 사모상품 40억원어치(3종)를 제외한 공모 판매 물량은 10억원어치를 밑돌 뿐이다.

은 DLS는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1287억원어치가 팔렸다. 6월 이후엔 은값을 발표하는 런던귀금속시장협회(LBMA)가 ‘국제 은 기준가격’을 내놓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에 판매가 잠정 중단됐다가 9월 이후 다시 시장에 나왔다.

전문가들은 증권사가 은 DLS 발행을 꺼리는 진짜 이유로 상품 헤지(위험 분산) 비용을 꼽았다. 요즘처럼 은값 변동성이 클 때는 헤지 비용이 줄고, DLS 수익률은 상승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가격을 전망하기 어려울 만큼 은값이 떨어지면서 은 선물 등 파생시장이 제기능을 하지 못하게 됐고, 그 여파로 헤지 비용이 오히려 늘었다는 설명이다.

이중호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헤지비용 상승으로 수익률을 높게 주지도 못하는 데다 은 투자에 대한 공포심리도 큰 상황”이라며 “은 DLS를 내놔도 팔리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증권사들이 아예 상품 발행을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제 은시세는 달러화 강세 여파로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은 선물은 5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온스당 15.42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가격이다. 은값 폭락 여파로 작년 이전의 은 DLS 투자자 중 상당수가 손실 구간에 진입한 상태다. 은 DLS는 최초 계약 시점보다 은값이 40~50%가량 떨어지지 않으면 약속된 이자를 주는 조건으로 발행되는데, 이 범위를 이탈하면 은값 하락폭만큼 원금을 떼인다. 2012년부터 2013년 초까지 은 시세는 지금의 두 배 수준인 온스당 26~35달러였다. 전문가들은 5000억원 이상의 은 DLS 물량(원금비보장형 상품 기준)이 손실 구간에 진입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