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잃은 어미소 이야기의 교훈기업도 결국 '공감의 場'이다
“어릴 적 집에 소가 있었는데 송아지를 팔면 밤새도록 어미 소가 웁니다. 그냥 우는 것이 아니라 숨이 끊어질 듯 웁니다. 소를 팔았던 삼촌과 동네 아저씨는 그 다음날 담배를 하나 피워 물고 평소보다 더 정성껏 쇠죽을 끓여요. 아무것도 모르는 동네 아이들도 소 곁으로 다가가 지푸라기라도 먹이려 했습니다.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일 겁니다. 어떤 이웃도, 어떤 사람도 저 소가 왜 우느냐고 말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방송인 김제동 씨의 최근 얘기가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내용 자체에 대한 관심도 그렇지만 정치적인 관점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얘기가 이뤄진 장소와 대상, 그리고 배경이 최근 정치판에서 벌어진 조치와 무관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얘기를 자신의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 같다. 어떤 이는 아주 깊게 공감하는 반면 어떤 이는 한낱 감상적인 정치적 수사라고 폄훼한다.

새끼 잃은 어미소 이야기의 교훈기업도 결국 '공감의 場'이다
김씨가 어떤 의도로 이 얘기를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각자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도 일괄적인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 본디 얘기는 말하는 사람의 몫이라기보다는 듣는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독백이나 일기가 아닌 만큼 듣는 사람의 상황이나 성향에 따라 해석하면 될 일이다.

이런 차원에서 기업교육 현장에 있는 필자에게는 이 얘기가 경영적 관점으로 들린다. 경영에서 ‘사람’만큼 중요한 자원이 없다는 것을 설파하는 직업병인지 모르겠으나 이 얘기의 구성 요소들이 기업의 사람 관리에서 발생하는 요소들로 치환돼 해석된다.

소는 직원으로, 송아지는 직원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으로, 송아지를 떠나 보내는 것은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결핍으로, 우는 것은 고충의 토로로, 소 주인 삼촌은 경영자로, 쇠죽과 지푸라기는 공감과 위로로, 왜 우느냐는 반응은 경영자의 일방적이고 가혹한 처사로 들린다는 것이다.

정성껏 쇠죽을 끓이는 소 주인의 모습은 직원의 상실감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경영자를 떠올리게 한다. 왜 그런 고충을 토로하느냐고 핀잔을 주거나 재갈을 물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다가가 마음으로 공감하고 위로하는 모습 말이다. 이런 연상은 최근 방한해 리더의 공감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신 교황과 오버랩된다.

종교계의 정점이라는 높고 고귀한 권위를 스스로 내려놓고 사회적 약자에게 고개를 숙여 눈높이를 맞추고, 진정으로 따스한 미소와 눈빛으로 그들과 교감하며, 삶에 필수적인 것들의 결핍에 의한 쓰라린 상처와 감정을 어루만졌다. 모름지기 리더란 공감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그렇게 공감했던 약자들이 결코 그에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었음에도 말이다.

소는 주인에게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직원 역시 경영자와 이해관계로 얽혀있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약자에게도 공감으로 소통하는데 하물며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직원과 공감하지 않는다면 리더가 아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짐승이 처한 안타까운 상황과 그에 따른 감정을 따뜻하게 껴안는 것이 소 주인이다.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않는다 해도 소가 반항하거나 뛰쳐나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데도 소 주인은 그렇게 행동한다. 인간이 가진 타자에 대한 근본적인 연민이자 소 주인 자신의 마음에 대한 위로 때문이다.

직원은 말도 통하고, 자신의 감정을 공감하지 않는 경영자에게는 반항하거나 떠난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경영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그것은 직원들의 신뢰와 그 신뢰에 기반한 실행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경영자 자신의 이해를 위한 시작이 공감이다. 결국 경영자에게 공감은 인간이 가진 타자에 대한 근본적인 연민이자 자신의 마음에 대한 위로,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를 위한 시작인 것이다.

소의 감정을 껴안는 소 주인 얘기를 정치적으로 해석해 끝나지 않을 다툼에 휘말리는 것은 여러모로 소모적이다.

이보다는 우리 회사의 직원과 진실되게 공감하는지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는 것이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나 성공적인 경영을 위해서 더 좋지 않을까.

박기찬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