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커진 중국 IT 기업…한국 게임산업 판 흔든다
‘아이러브커피’ ‘아이러브파스타’로 유명한 국내 모바일 게임사 파티게임즈는 중국 최대 게임사 텐센트로부터 2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지난 1일 발표했다. 파티게임즈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투자한 텐센트는 지분 20%를 가진 2대주주로 올라섰다.

한국 게임업계에서 ‘큰손’으로 떠오른 중국 기업의 위상을 보여주는 가장 최근 사례다. 텐센트 알리바바 등 중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은 거대 자본을 앞세워 한국 게임 기업 인수에 나서고 있다. 중국 기업 입장에서는 한국의 우수한 콘텐츠를 가져가 서비스할 수 있고, 한국 기업은 중국 업체와의 제휴로 인구 13억명의 중국 시장에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산업을 옥죄는 국내 규제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미래에 더욱 각광받을 게임 콘텐츠 개발 주도권이 중국에 넘어갈지 모른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영향력 높이는 중국 IT 기업

중국 기업들의 한국 시장 공세는 전방위적이다. 중국 샨다게임즈는 2004년 일찌감치 1000억원을 투자해 액토즈소프트를 인수했다. 지분 51%를 가진 최대주주다. 2010년엔 1100억원으로 아이덴티티게임즈를 인수했다.

중국에서 텐센트와 경쟁 관계에 있는 알리바바 역시 최근 한국 게임 기업에 높은 관심을 표하고 있다. 파티게임즈, 네시삼십삼분과 게임 퍼블리싱(유통) 계약을 맺고 모바일 게임을 중국에서 서비스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텐센트와 마찬가지로 국내 모바일 게임사에 지분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꼭 지분을 투자하지 않더라도 중국 업체들의 영향력은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태다. 외국 기업이 중국 게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국 현지 기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덩치 커진 중국 IT 기업…한국 게임산업 판 흔든다
중국에서 ‘대박’을 터뜨린 스마일게이트의 1인칭 총싸움게임 ‘크로스파이어’를 비롯해 엔씨소프트의 ‘블레이드앤소울’, 엑스엘게임즈의 ‘아키에이지’, CJ게임즈의 ‘미스틱파이터’가 텐센트와 중국 퍼블리싱 계약을 맺고 중국 진출에 나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게임 시장의 성장이 정체된 탓에 많은 개발사가 중국 시장에 기대를 걸고 있다”며 “이 때문에 국내 게임사들은 중국 IT 기업에 줄을 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몸값 높아지는 게임 콘텐츠
덩치 커진 중국 IT 기업…한국 게임산업 판 흔든다

한국에서는 게임이 중독을 유발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지만 세계적으로는 게임 콘텐츠에 대한 가치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마인크래프트’ 개발사인 스웨덴의 모장에 25억달러(약 2조6000억원)를 인수 금액으로 제시했다. 게임만큼 이용자를 끌어들이기에 좋은 콘텐츠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이 지난달 게임 동영상 공유 사이트 트위치를 약 1조원에 인수하고, 지난 7월 알리바바가 미국 모바일 게임회사 카밤에 약 1200억원을 투자한 것도 비슷한 이치다.

중국에서는 텐센트 알리바바 바이두 등 중국 IT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게임 콘텐츠가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알리바바는 텐센트코리아에서 게임 사업을 담당한 황매영 씨를 알리바바 한국시사장으로 선임했다. 국내 게임회사 관계자는 “최근 들어 알리바바가 국내 게임사들을 찾아 다니고 있다”며 “텐센트가 한국의 우수한 게임 콘텐츠를 독식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업체의 투자 유치로 한국 게임사들이 중국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지름길이 생겼지만 지나치게 중국 업체들의 입김이 세지는 것 아니냐는 경계의 시선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정부가 직접 나서 자국 IT 기업들을 보호해주는데 한국은 오히려 정부가 자국 기업을 규제한다며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의 지분 투자나 퍼블리싱은 단순히 한국 게임을 중국에 소개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한국 게임사들의 노하우를 함께 가져간다는 의미”라며 “조만간 중국 게임이 한국을 넘어서는 날이 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