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산 콘덴세이트(초경질 원유) 40만배럴이 GS칼텍스를 통해 국내로 들어온다. 41년 만에 미국에서 수입되는 첫 비정제유다. 미 상무부가 휘발유 등 정제유와 마찬가지로 콘덴세이트 역시 ‘제품’이라며 수출을 허가해 계약이 성사됐다고 한다. 국내 석유업계는 중동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GS칼텍스는 운송비 등을 감안해도 가격이 중동산보다 싸다고 말한다.

그동안 원유수출을 엄격히 제한해왔던 미국이 그나마 유연해진 것은 셰일가스 덕분이다. 석유가 남아돈다고 할 정도로 석유 수급구조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여기에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전전긍긍하며 탈출구를 꾀하던 국내 석유업계의 상황이 맞물리면서 전통적인 에너지 수출입 판도가 깨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앞으로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당장 미국 내에서 원유수출 금지를 즉각 풀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이 그렇다. 오바마 1기 행정부에서 국가경제위원장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부터가 그런 주장을 편다. 그는 의회가 법을 고치지 않으면 오바마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동원해서라도 원유수출을 허용하라고 촉구했다. 자유무역 원칙에도 맞지 않는 원유수출 금지를 해제하면 경제성장, 환경, 지정학적 이익 등 모든 측면에서 국익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백악관 대변인도 대통령이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하고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지금 미국의 가솔린 가격은 갤런당 3.43달러로 2010년 이후 최저수준이다. 원유 및 천연가스 생산이 확대되면서 가솔린 가격은 더 하락할 전망이다. 미국이 원유 수출국으로 전환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수입처 다변화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업계는 그렇다 치고, 정부는 과연 국가 차원의 큰 그림을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에너지 정책이 환경정책의 하위수단으로 전락하면서 방향성을 잃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부는 녹색이니 뭐니 떠들다가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를 제때 읽어 내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