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거장' 지휘자 로린 마젤 별세…한국과 깊은 인연
2008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역사적인 평양 공연을 펼쳤던 세계적인 지휘자 로린 마젤이 13일(현지시간) 타계했다. 향년 84세.

마젤은 미국 버지니아주 캐슬턴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폐렴에 따른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그의 대변인이 이날 발표했다. 그는 최근까지 자신이 만든 음악 축제 ‘캐슬턴 페스티벌’의 올해 행사(6월28일~7월20일)를 준비해 왔다. 당초 지난달 28일 개막 행사에서 오페라 ‘나비부인’을 지휘하려 했지만 건강상 문제로 공연 전 연설만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젤은 생전 200개 가까운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7000차례가 넘는 연주회·오페라 공연을 지휘했다. 베토벤, 브루크너, 멘델스존, 브람스, 말러 등 300개 이상 음반을 남겼다.

마젤은 러시아 혈통의 유대인으로 1930년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태어나 어릴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성악, 어머니는 피아노를 전공했다. 할아버지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했다. 마젤 역시 4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8세에는 대학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지휘 신동’으로 일찍부터 주목받았다.

15세가 될 때까지 뉴욕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NBC 심포니 등 미국 주요 교향악단을 지휘했고 30세가 된 1960년 미국인 최초로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무대에 지휘자로 데뷔했다. 이후 베를린 도이치 오퍼,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 빈 국립 오페라, 뉴욕 필하모닉, 뮌헨 필하모닉 등 세계적 교향악단에서 음악감독과 상임지휘자를 지냈다. 작곡가로 활동하며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을 토대로 한 오페라 등을 만들기도 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수차례 내한해 공연했으며 첼리스트 장한나의 재능을 높이 사 국내외 여러 무대에서 협연하고 지휘를 가르치는 등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테너 김우경 등과도 협연했다.

뉴욕필 상임지휘자 시절인 2008년 2월 북한을 방문해 평양 공연을 이끌었다. 당시 평양 동평양대극장에서 북한과 미국 국가, ‘아리랑’,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등을 지휘했다. 평양으로 가기 전 한반도에 영구적 화해 등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고 했던 마젤은 공연 후 “아리랑이 미국인과 북한 사람을 하나로 만들었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마젤과 함께 평양을 찾았던 김용연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부사장은 “2008년 평양 공연은 북·미 관계의 긴장감을 완화한 것은 물론 남북한이 음악으로 교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년 봄 통영 국제 음악제에 마젤을 초청하기 위해 협의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비보를 접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