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동결이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연 2.50%)는 14개월째 제자리다. 세월호 사태로 산업생산이 두 달째 마이너스임을 확인하고도 동결, 올해 성장률 전망을 하향조정(4.0%→3.8%)하고도 동결이다. 물가상승 압력이 예상보다 약해졌음을 시인하고, 경상수지 흑자가 840억달러에 달해 대외불균형이 더욱 심해질 것을 예상하면서도 결론은 똑같다.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처럼 만장일치가 아니라 1명이 소수의견을 냈고, 이주열 한은 총재가 세월호 여파의 장기화 우려를 언급했다는 것 정도다.

경제는 어떤 상황에서든 금리 인상요인과 인하요인이 혼재하는 양면성이 있다. 이 총재 말마따나 금리 조정은 기대효과와 더불어 비용도 따른다. 그래서 심사숙고해 결정을 내리라고 한은에 중립적 지위를 부여하고, 금통위원들의 임기를 보장한다. 하지만 한은과 금통위는 심사숙고의 의미를 지나치게 의식하다 스스로 운신할 공간을 없애고 있다. 매달 플러스와 마이너스 효과를 더하고 빼다가 결국 ‘미결정의 결정’을 발표하고 마는 불임(不姙) 금통위가 된 것이다.

금통위가 무소신, 무결정의 함정에 빠진 것은 금리정책의 효과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데서 기인했다고 본다. 물론 금리정책은 무차별적이고 동심원처럼 퍼져 나간다. 예금자와 차입자, 개인과 기업, 집주인과 세입자, 환율과 물가 등에 모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아닌 디플레이션을 염려하는 상황에선 금통위의 기대와 달리 금리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당장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거나 내린다고 해서 어머어마한 파장이 몰려오는 게 아니다.

금통위 회의장면을 보면 마치 국가 존망을 결정하듯 근엄한 표정들이다. 그럴수록 금통위의 발은 무거워지고 미세한 금리 조정조차 주저하게 된다. 이제는 한은이 강조하던 ‘선제적 대응’이란 말조차 실종된 지 오래다. 금리 동결 14개월 동안 대다수 국민은 극심한 경기 부침을 피부로 느끼고 있고, 정부도 경제의 하방리스크를 걱정하며 다양한 정책 수단을 검토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은의 경기 인식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금리정책은 좀더 신속·경쾌하게 움직여야 한다. 스윙을 할 때는 어깨의 힘 빼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