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
“예술을 하려면 완벽주의자가 돼야 해요. 그런데 완벽주의자가 되면 아무리 연습해도 직성이 풀리지 않으니 스스로 너무 비참해져요. 주위 사람들이 괴롭죠. 부상 때문에 5년 동안 바이올린을 전혀 건드리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속박에서 벗어나게 되더라고요.”

‘무대 위의 암사자’라 불릴 정도로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는 2005년 손가락 부상으로 연주를 그만뒀다. 평생 해왔던 일이자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다. 재활을 시작했지만 완전히 회복되리란 보장은 없었다.

2010년 그는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가 이끄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하면서 재기를 선언했다.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된 것은 그만큼 시간이 지나서였다. “지난해 11월 공연에서야 자신감을 갖고 음악을 선보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난해 한국, 일본, 중국 17개 도시를 순회하는 공연으로 ‘부활’을 알렸다. 21일 서울 구기동 자택에서 만난 정씨는 “요새는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부상 전과 지금 달라진 점을 꼽으라면 솔직히 말해 제가 이젠 노쇠하다는 것이겠죠.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음악의 깊이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인생에서 겪은 것들이 음악에 반영돼요. 부상을 딛고 바이올린을 다시 잡은 이후 음악이 더 자유로워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또 다른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올해는 지난해보다 활발한 활동을 계획 중이다. 오는 10월 상하이, 항저우 등 중국 투어를 앞두고 있고 12월2일 영국 런던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복귀 무대를 연다. 내년 4월에는 일본 순회 공연도 예정돼 있다. 특히 영국 공연은 정씨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1970년 5월13일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했던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공연으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를 세계에 알렸기 때문이다.

순회 공연에 앞서 두 차례의 공연을 통해 한국 팬과도 만날 예정이다. 먼저 오는 28일 오후 8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그래도 사랑’이란 이름의 무료음악회를 연다. 세월호 참사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음악으로 치유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G선상의 아리아’로 알려진 바흐 관현악 모음곡 3번 2악장 ‘에어’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란 별칭이 붙은 바흐의 ‘샤콘느’,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등을 연주한다.

이어 내달 13일에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기 위한 자선 음악회 ‘그래도 희망’을 진행한다. 이번 공연의 수익금은 르완다 어린이들을 돕는 데 쓰이며 일부는 한국의 어린 음악가들을 지원하는 데도 사용된다.

정씨와 4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는 피아니스트 케빈 커너와 첼리스트 양성원 연세대 음대 교수가 호흡을 맞춘다. 슈베르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와 피아노 삼중주를 연주한다. ‘꿈나무 아티스트’인 임일균 군(14·피아노)과 유지인 양(13·첼로)도 무대에 오른다. 3만~10만원. (후원석 20만원)

이승우 기자 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