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회사 요금팀의 일상은 회의의 연속이다. 요금제 하나를 새로 만드는 데 길게는 1년까지 걸린다. 사진은 SK텔레콤 요금팀의 회의 모습.   /SK텔레콤  제공
통신회사 요금팀의 일상은 회의의 연속이다. 요금제 하나를 새로 만드는 데 길게는 1년까지 걸린다. 사진은 SK텔레콤 요금팀의 회의 모습. /SK텔레콤 제공
이동통신회사들이 일제히 ‘영업정지’라는 족쇄에서 풀려났다. 통신업계 사상 최장 기간이었던 순차적 영업정지가 20일 모두 막을 내렸다. 영업정지 기간 승자는 KT였다. 20만명을 훌쩍 넘는 번호이동 가입자를 끌어들였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집토끼’를 뺏겼는데 가만 있을 리 없다. 두 회사 모두 영업을 재개하자마자 한층 날카로워진 요금제를 들고 나왔다. 보조금은 함부로 쓸 수 없는 만큼 정교한 요금제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전략이다.

이동통신회사의 주력 요금제는 회사마다 대략 10여가지다. 여기에 4~5개의 부가 옵션을 붙일 경우 실제로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요금제의 종류는 50가지를 훌쩍 넘는다. 최근엔 ‘착한 가족할인(SK텔레콤)’과 같은 새로운 요금제도 속속 등장하는 분위기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크게 넓어졌다. 그러나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너무 많은 선택지는 오히려 부담이다. 자칫 요금제 파도에 묻혀 허우적댈 확률이 높다. 왠지 잘못 선택한 것 같다는 찜찜함도 남는다. 어떡해야 후회 없는 답안을 골라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조언은 ‘너 자신을 알라’로 요약된다. 복잡하게만 보이는 요금제. 탄생 과정과 개인별 선택 요령 등을 살펴본다.

요금제의 출발점은 ‘빅 데이터’

2012년 봄 SK텔레콤 을지로 본사. 20명가량의 요금팀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며칠째 이어진 모임의 명칭은 ‘아이디어 페스티벌’. 문패는 그럴싸하지만 머리를 쥐어짜는 고난의 행군이다. “뭐, 새로운 거 없어”라는 팀장의 반복적인 채근에 한 여직원이 손을 들었다. “데이터를 선물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요.” 사무실이 환해졌다.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 물꼬가 트이자 아이디어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스마트폰 요금제 탄생에서 출시까지…'집토끼'마음 사로잡을 굿 아이디어 '짜고 또 짜내고'
어느 정도 요금제의 윤곽이 잡힐 때쯤 누군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학교에서 힘센 녀석이 갈취하면 어떡하죠.” 모자라는 데이터를 폭력을 통해 충당하는 부작용을 막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곧바로 ‘일진(교내 폭력학생) 퇴치 방안’이 논의됐고, 가족과 일부 친지 등으로 선물 대상을 제한하는 안전장치가 마련됐다. 이렇게 마련된 새로운 요금제는 10개월가량 지난 이듬해 2월 출시됐다. 양맹석 요금팀장은 “요금제 한 줄기를 뽑아내는 데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까지 걸린다”며 “다른 회사의 요금제를 베끼는 데도 한 달은 족히 걸린다”고 설명했다.

요금팀 직원들이 항상 주의를 기울이는 부분은 소비자의 일상이다.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통신서비스를 이용하는지를 모아 놓은 ‘빅 데이터’가 새로운 요금제 탄생의 출발점이다. ‘선수’들끼리는 이를 ‘TPO’라고 부른다. 시간(time) 장소(place) 경우(occasion)의 줄임말이다. ‘출퇴근 프리 요금제’는 ‘시간(T)’에, ‘지하철 프리’는 ‘장소(P)’에, 출장가는 사람들을 위한 ‘1일권 요금제’는 ‘경우(O)’에 주목한 아이디어다. 김선중 SK텔레콤 마케팅전략본부장은 “창의적인 발상을 끌어내기 위해 요금팀에는 되도록 다양한 전공자를 배치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생활패턴 파악이 우선

SK텔레콤 등 이통사들은 최근 들어 ‘데이터 무제한’이라는 새로운 요금제를 경쟁적으로 선보였다. ‘집토끼’로 불리는 장기 우량 고객을 잡기 위한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쏟아내는 중이다. 가뜩이나 많은 요금제에 곁가지가 주렁주렁 붙는 추세다.

요금제 수렁에서 허우적대지 않으려면 우선 자신의 생활패턴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하루에 데이터를 얼마나 사용하는지, 어떤 경우에 집중적으로 통화하는지 등을 따져보고 대리점을 찾아야 한다.

집전화와 인터넷 등을 연계해 생각하는 것도 똑똑한 소비자가 되는 요령이다. 최근 요금제의 중심축이 된 ‘데이터’에 대한 상식을 갖추는 것도 필수다. 고화질(HD) 모바일 방송으로 60분짜리 드라마 한 편을 시청하는 데 드는 데이터 트래픽(스트리밍 기준)은 대략 700MB~1GB 수준이다. 5GB가 기본 제공되는 5만원대 LTE 요금제 사용자라면 한 달에 이동 중 5시간가량의 시청이 가능한 셈이다.

1주일에 대략 몇 편의 동영상을 보는지 체크해야 요금제 선택의 답이 보인다. 동영상 중에서도 특히 어떤 분야를 집중적으로 시청하느냐도 체크 사항이다. 주로 야구 중계를 본다면 SK텔레콤의 ‘T스포츠팩’ 등 운동경기 특화 요금제가 고려 대상이다. 양 팀장은 “부지런한 만큼, 많이 아는 만큼 자신에게 맞는 요금제를 선택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