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리더들 '일상으로 복귀' 말할 때"
“여전히 바닷속에 빠져 있는 세월호처럼 한국 경제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정치인을 비롯한 한국의 리더들이 국민들에게 ‘이제 다시 일어서자(It’s OK to move on)’라고 말해야 한다.”

"한국 리더들 '일상으로 복귀' 말할 때"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월스트리트저널(WSJ) 한국특파원을 지낸 에번 람스타드 스타트리뷴 경제부문 편집장(사진)이 한국에 이런 충고를 던졌다. 12일(현지시간) 미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홈페이지에 올린 ‘세월호 비극이 한국 경제를 붕괴시키고 있다’는 제목의 기고문에서다.

람스타드 편집장은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인들이 겪고 있는 충격과 슬픔, 부끄러움 그리고 분노와 비판 등은 9·11테러 후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미국인들이 겪은 것과 비슷하다”며 “이런 감정이 집단적 의욕상실을 불러와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공공 활동이 중단됐고 콘서트와 영화 프로모션, 음반 공개까지 모두 연기 또는 취소됐다”며 “국민들이 여행과 외식을 자제하면서 소비경기가 얼어붙었고 특히 자영업자들이 위기에 빠졌다”고 했다. 이어 “한국의 경제가 바닷속에 빠져 있는 세월호처럼 당분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더욱 큰 문제”라고 했다.

그는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라는 끔찍한 사건 후에도 한국 사람들은 ‘무슨 일 있겠느냐’며 한 달 뒤 크리스마스 쇼핑을 즐겼는데 이번 세월호 참사는 한국에서 아주 이례적인 트라우마”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국민적 트라우마를 치유할 리더들, 가령 9·11테러 이후 데이비드 레터맨 같은 인물이 한국에는 없다”고 꼬집었다.

미 CBS방송의 유명 토크쇼 진행자인 레터맨은 9·11테러 1주일 뒤인 2001년 9월17일 코믹한 ‘레이트 쇼’를 재개했다. 그는 충격과 슬픔에 잠긴 시청자들을 눈물과 웃음으로 다독이면서 “이제 다시 일어서자”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람스타드 편집장은 국민적 트라우마를 그냥 지켜보고만 있는 정치 지도자들을 비판했다. 9·11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처럼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게 미국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정치 지도자들을 한국에선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 발생 9일째 되는 날 의회 연설에서 테러리스트에 대한 단호한 응징을 천명하면서 “우리 모두 침착해야 한다. 자신감을 갖고 경제활동을 지속해 달라”고 국민에게 부탁했다. 또한 “테러리스트가 미국의 상징을 공격했지만 핵심 자원은 건드리지 못했다. 미국의 성공 요인인 국민의 근면과 창조성, 기업가정신은 테러 이후에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 일상생활로 돌아가야 한다(go back to our lives). 그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이 그해 10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선포하자 지지율은 90%에 육박했다.

부시 대통령의 연설 9일 뒤 줄리아니 당시 뉴욕시장은 한 TV 저녁 생방송에 소방관들과 함께 출연했다. 사회자가 “이런 슬픈 시국에 웃으면서 프로그램을 진행해도 되느냐”고 묻자 줄리아니 시장은 “물론이다”고 말했다. 줄리아니 시장은 황폐화된 뉴욕을 찾는 관광객들이 등장하는 홍보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우리 모두 정상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