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주기식 행정문화'가 세월호 참사 원인
'낙하산' 봉쇄…민관유착 비리사슬 끊겠다
고시·순환보직 등 낡은 인사시스템 대수술
○관료주의와 전쟁 선포
박 대통령은 이번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으로 ‘비정상적인 관행과 봐주기식 행정문화’를 꼽았다. 특히 그 기저에는 공직사회의 부조리와 민·관 유착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잘못된 채 고착화된 관료사회의 적폐가 뭔지, 어떻게 고쳐야 할지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우선 민·관 유착을 뿌리 뽑는 방안으로 “유관 기관에 퇴직 공직자들이 가지 못하도록 하는 등 관련 제도를 근본적으로 쇄신할 것”을 주문했다. 정부 산하기관이나 유관 민간회사에 ‘관피아’들이 낙하산으로 가면서 유착이 형성되고 관리감독 소홀이 벌어지는 것을 더 이상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공직사회의 폐쇄성도 지적했다. “공직사회가 그동안 폐쇄적인 채용구조 속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왔고 부처 칸막이 속에서 이기주의가 만연해왔다”며 고시 출신끼리만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폐쇄적인 서열문화를 깨겠다는 의지를 비쳤다. 또 “순환보직 시스템에 따라 여러 보직을 거치다 보니 전문성이 부족한 일반 관료만 양성하고 있다”며 낡은 인사 시스템도 바꿀 것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과거부터 관행적으로 내려온 소수 인맥의 독과점과 유착은 어느 한 부처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부처의 문제”라며 이른바 ‘모피아’(재무부 출신 관료), ‘산피아’(산업자원부 출신 관료) 등 특정 인맥이 좌우하는 관료사회 문화를 바꾸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과거에도 이런 문제를 몰라서가 아니라 알았어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거나 실패한 것이 문제”라며 “이번만큼은 소위 ‘관피아’나 공직 ‘철밥통’이라는 부끄러운 용어를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추방하겠다는 심정으로 관료 사회의 적폐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 확실히 들어내고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공무원의 낙하산 인사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물론 공무원의 임용 방식에서부터 보직관리 평가 보상 등 인사 시스템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수술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개조 각오로 임해야”
박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에 이어 ‘국가개조’를 향후 국정 운영의 최우선 원칙으로 삼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이번에는 결코 보여주기식 대책이나 땜질식 대책 발표가 있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안전 시스템 전체를 완전히 새로 만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며 국가개조에 나선다는 자세로 임해줄 것을 당부했다. 그러면서 “집권 초에 악습과 잘못된 관행들, 비정상적인 것들을 정상화하는 노력을 더 강화했어야 하는 데 안타깝다”고 아쉬움도 토로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원전비리와 숭례문 복원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원전 분야 종사자들 간 비리 사슬구조와 문화재의 카르텔 구조가 밝혀졌는데 이번 세월호 참사 원인인 해운 비리도 비슷하다”며 “이런 문제는 비단 원전 문화재 해운 분야뿐 아니라 철도 에너지 금융 교육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곳곳에 산재해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고질적인 집단주의와 비리 사슬 개혁에 나서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14일 만의 대국민 사과
박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시작하면서 “합동분향소를 다녀왔는데 소중한 가족을 잃은 슬픔과 비통함으로 가득했다”며 “뭐라 사죄를 드려야 그 아픔과 고통이 잠시라도 위로받을 수 있을지 가슴이 아프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다”고 세월호 참사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참사 발생 열나흘째에 이뤄진 사실상 대국민 사과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고에 대해 총리가 사의를 밝혔지만 지금은 실종자를 찾기 위한 노력이 더 중요하다”며 “(국무위원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국민과 국가를 위한 충정으로 최선을 다한 후에 그 직에서 물러날 경우에도 후회 없는 국무위원들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