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첫날인 29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은 검은색 옷을 입고 국무회의장에 들어섰다. 앞서 분향소 조문길에 희생자 유가족들의 가슴 절절한 호소를 들어서인지 침통한 표정이었다. “뭐라 사죄드려야 할지…”라며 대국민 사과로 시작된 박 대통령의 모두발언은 국가개조를 당부하며 관료사회 개혁을 촉구하는 대목에서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박 대통령은 “오랫동안 쌓여온 적폐를 바로잡지 못한 게 너무나 한스럽다”며 안타까움을 표현한 뒤 특히 공직사회를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개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관료주의와 전쟁 선포

박 대통령은 이번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으로 ‘비정상적인 관행과 봐주기식 행정문화’를 꼽았다. 특히 그 기저에는 공직사회의 부조리와 민·관 유착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잘못된 채 고착화된 관료사회의 적폐가 뭔지, 어떻게 고쳐야 할지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우선 민·관 유착을 뿌리 뽑는 방안으로 “유관 기관에 퇴직 공직자들이 가지 못하도록 하는 등 관련 제도를 근본적으로 쇄신할 것”을 주문했다. 정부 산하기관이나 유관 민간회사에 ‘관피아’들이 낙하산으로 가면서 유착이 형성되고 관리감독 소홀이 벌어지는 것을 더 이상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공직사회의 폐쇄성도 지적했다. “공직사회가 그동안 폐쇄적인 채용구조 속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왔고 부처 칸막이 속에서 이기주의가 만연해왔다”며 고시 출신끼리만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폐쇄적인 서열문화를 깨겠다는 의지를 비쳤다. 또 “순환보직 시스템에 따라 여러 보직을 거치다 보니 전문성이 부족한 일반 관료만 양성하고 있다”며 낡은 인사 시스템도 바꿀 것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과거부터 관행적으로 내려온 소수 인맥의 독과점과 유착은 어느 한 부처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부처의 문제”라며 이른바 ‘모피아’(재무부 출신 관료), ‘산피아’(산업자원부 출신 관료) 등 특정 인맥이 좌우하는 관료사회 문화를 바꾸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과거에도 이런 문제를 몰라서가 아니라 알았어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거나 실패한 것이 문제”라며 “이번만큼은 소위 ‘관피아’나 공직 ‘철밥통’이라는 부끄러운 용어를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추방하겠다는 심정으로 관료 사회의 적폐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 확실히 들어내고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공무원의 낙하산 인사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물론 공무원의 임용 방식에서부터 보직관리 평가 보상 등 인사 시스템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수술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개조 각오로 임해야”

박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에 이어 ‘국가개조’를 향후 국정 운영의 최우선 원칙으로 삼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이번에는 결코 보여주기식 대책이나 땜질식 대책 발표가 있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안전 시스템 전체를 완전히 새로 만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며 국가개조에 나선다는 자세로 임해줄 것을 당부했다. 그러면서 “집권 초에 악습과 잘못된 관행들, 비정상적인 것들을 정상화하는 노력을 더 강화했어야 하는 데 안타깝다”고 아쉬움도 토로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원전비리와 숭례문 복원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원전 분야 종사자들 간 비리 사슬구조와 문화재의 카르텔 구조가 밝혀졌는데 이번 세월호 참사 원인인 해운 비리도 비슷하다”며 “이런 문제는 비단 원전 문화재 해운 분야뿐 아니라 철도 에너지 금융 교육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곳곳에 산재해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고질적인 집단주의와 비리 사슬 개혁에 나서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14일 만의 대국민 사과

박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시작하면서 “합동분향소를 다녀왔는데 소중한 가족을 잃은 슬픔과 비통함으로 가득했다”며 “뭐라 사죄를 드려야 그 아픔과 고통이 잠시라도 위로받을 수 있을지 가슴이 아프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다”고 세월호 참사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참사 발생 열나흘째에 이뤄진 사실상 대국민 사과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고에 대해 총리가 사의를 밝혔지만 지금은 실종자를 찾기 위한 노력이 더 중요하다”며 “(국무위원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국민과 국가를 위한 충정으로 최선을 다한 후에 그 직에서 물러날 경우에도 후회 없는 국무위원들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