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이민자의 아
[천자칼럼] 잭슨 목련
들로 태어나 미국 대통령이 된 앤드루 잭슨. 그가 태어나기 3주 전에 아버지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 독립전쟁 때 13세로 민병대에 입대한 그는 전장에서 맏형을 잃었다. 영국군 포로가 된 뒤에는 둘째 형까지 잃었고, 곧이어 어머니마저 콜레라로 잃었다.

14세에 천애고아가 된 그는 안장 만드는 가게에서 일하며 틈틈이 공부했다. 스무살에 변호사가 됐지만 도시에서 일거리를 얻기 힘들어 서부 개척지로 향했다. 인디언의 습격으로 동료들이 다 죽고 혼자 살아남기도 했다. 이후 농장을 일구고 테네시주 의원이 된 뒤 미·영 전쟁의 영웅으로 승승장구했지만 그의 일생은 순탄치 않았다.

상처로 얼룩진 러브 스토리도 그렇다. 그는 21세 때 동갑내기 레이첼과 사랑에 빠져 3년 만에 결혼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레이첼이 17세에 결혼했다가 성질 괴팍한 남편에게 쫓겨났는데, 서류가 미처 정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신문에 게재된 이혼 공지를 믿었던 그녀는 절망했다. 당시는 남자가 일방적으로 공지하는 것으로 대부분 절차가 종료됐다고 한다. 결국 잭슨은 레이첼과 살림을 차린 지 2년이 지나서야 법적인 문제를 끝낼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잭슨의 상처에 소금을 뿌려댔다. 그는 자신과 아내를 비아냥대는 사람에게 세 번이나 결투를 신청해 두 번은 목숨을 잃을 뻔했다.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는 13번이나 결투를 했는데 그 대가로 두 개의 총알이 몸에 박힌 채 살았다.

1828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유례 없는 인신공격을 받았다. 남의 마누라를 훔치고 불륜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매춘부였다는 악담까지 들었다. 그러나 마침내 백악관에 입성했다. 레이첼은 아쉽게도 취임식을 두 달 앞두고 심장마비로 죽었다. 잭슨은 취임 직후 고향집 정원의 목련나무 싹을 가져와 백악관 뜰에 심고 먼저 간 아내를 기렸다. 바로 이것이 ‘잭슨 목련’의 기원이다.

두 번의 대통령직을 마치고 돌아간 곳도 목련 곁이었다. 그는 평생 홀아비로 살며 아이들을 키웠다. 그에겐 자식이 없어 처가 식구 중 부모 잃은 아이들을 모두 입양해 길렀다. 인디언 고아까지 데려다 돌봤다.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하면서 세월호 참사를 당한 단원고에 ‘잭슨 목련’의 씨로 기른 묘목을 기증했다. 희생된 학생들을 기리면서 매년 봄마다 새로 피는 ‘부활’의 의미를 전하고자 한 것이리라. 어린 목련이 상처의 눈물을 거두고 부활의 꽃을 피우는 날이 빨리 오길 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