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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대표면 배의 선장인데 배가 가라앉을 때까지 운명을 같이해야 합니다."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이 과거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침몰하는 배의 선장이 갖춰야 할 자세를 언급한 대목이 있어 눈길이 간다.

유 전 회장은 지난 1999년 한 월간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세모 부도와 '오대양 사건'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유 전 회장은 당시 세모 경영에서 손을 뗀 것과 관련한 물음에 "자금을 경리 담당 직원들에게 전적으로 맡겼는데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내 앞으로 남은 재산이나 회사 지분이 거의 없다"며 "그리고는 직원들이 싹 등을 돌려버렸다"고 답했다.

1980년대 한강 유람선을 운영한 유 전 회장은 1990년대 세모그룹을 설립했다.

그러나 한강 유람선 사고 후 세모그룹의 모기업인 세모는 경영난 등으로 1997년 부도를 맞이했다.

그는 회사 대표를 선장에 비유해 배의 침몰까지 운명을 함께 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배가 가라앉으니까 헤엄을 잘 쳐 먼저 빠져나가는 사람이 따로 있는지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회사 대표와 선장과의 연관성에 주목한 발언이지만 공교롭게도 15여년이 지나 유 전 회장은 실제로 배가 침몰한 사고를 마주하게 됐다.

세월호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이 사고 직후 승객 대피를 돕지 않고 제일 먼저 탈출해 비난 여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과거 유 전 회장의 발언은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최근 침몰한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유 전 회장 일가가 실소유주다.

'오대양 사건'과 관련한 언급도 있었다.

오대양 사건은 지난 1987년 공예품 제조업체 오대양의 용인 공장에서 사장과 종업원 등 32명이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이다.

유 전 회장은 오대양 사건의 배후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기도 했다.

검찰은 1991년 오대양 사건을 재수사했지만 집단변사와 유 전 회장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밝히지는 못했다.

검찰은 대신 교리를 미끼로 신도들에게 11억원대의 사채 사기를 친 혐의로 그를 구속했다.

유 전 회장은 오대양 사건의 배후 의혹을 받은 기분을 '성폭행당한 처녀' 심정에 비유했다.

그는 "갑자기 성폭행당한 처녀는 억울해도 우리 정서상 하소연도 못하는데 소문은 내가 '몹쓸 X'인 것처럼 동네방네 난다"며 "오대양 사건과 연관됐다는 것만 생각하면 아예 변명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kong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