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제2의 도시 나르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구 6만3000명의 이 소도시가 최근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거주자의 82%가 러시아계 주민들이어서 ‘제2의 크림사태’가 우려되고 있어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2일(현지시간) “러시아의 크림 합병 이후 나르바 지역이 지정학적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을 시험할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인 많이 사는 에스토니아·라트비아, '제2 크림사태' 우려
에스토니아 인근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도 러시아인이 상당수여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는 친(親)러시아 시위대가 정부 주요 청사를 점거하며 분리 독립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소비에트연방 시절 동유럽 일대에 흩어진 러시아인들이 푸틴의 ‘팽창주의’를 합리화하는 뇌관으로 본격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동유럽 러시아계, 푸틴 팽창주의 미끼

러시아계 주민들로 가장 큰 홍역을 치르고 있는 곳은 우크라이나다. 동부 도네츠크, 하리코프 등에서는 친러시아 시위대가 최근 정부 청사와 경찰서 등을 점거하면서 시민공화국을 선포했다.

뉴욕타임스는 12일 “청사 점거 과정에서 300정의 자동소총과 400정의 러시아 제식권총 ‘마카로프’ 등이 시위대 손에 들어갔다”며 “우크라이나 정부가 통제권을 상실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를 향해 “시위대에 어떠한 물리력을 사용할 경우 위기를 해결하는 데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13일 우크라이나 보안부대가 시위대를 전격 진압하는 과정에서 양측에서 최소 6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져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서방세계는 러시아가 침공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 이 같은 상황을 배후조종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더글러스 페이스 전 미 국방부 정책차관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푸틴은 수천만의 러시아 동족이 러시아 영토 밖에 거주하게 됐다는 점을 들어, 소비에트연방의 붕괴는 20세기 지정학적인 대재앙이었다고 강조해왔다”고 말했다.

소비에트연방에서 독립한 뒤 유럽연합(EU) 및 나토에 가입한 발트 3국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라트비아는 26.7%, 에스토니아는 24.8%의 국민이 러시아계다. 러시아계 인구가 많이 거주하는 몰도바의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도 러시아와의 합병을 요구하고 있다. 마르코 미켈슨 에스토니아 하원외교위원회 의장은 “2008년 조지아 침공 이후 러시아는 팽창주의 전통을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방·러시아 갈등에 경제도 멍들어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은 경제적인 후폭풍에도 시달리고 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가격 인상 등으로 타격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대표적이다.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 낀 발트 3국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러시아는 리투아니아의 가장 큰 무역 파트너다. 전체 무역의 25%를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도 러시아와의 무역 규모가 10%에 이른다.

이코노미스트는 “발트 3국은 항구와 수송, 물류는 물론 가스, 농업분야에 대한 러시아 의존도가 높다”며 “서방의 경제 제재로 발트 3국이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를 공산이 크다”고 전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