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울산 계모의 의붓딸 폭행치사 사건에 대해 “법원이 지나치게 가벼운 형을 선고했다”는 비판 여론이 확산되면서 인터넷에서는 판사 ‘신상 털기’가 벌어지고 있다. 칠곡 사건 재판장의 이름이 한때 대형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이슈 검색어 1위에 오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법원 일각에서는 “양형기준 등을 준수했는데도 판사 개인 신상을 거론하며 위협하는 것은 문제”라며 “여론재판을 하라는 얘기냐”는 반론도 나온다.

서울시내 한 법원의 A판사는 “이번 판결은 판사 입장에서는 재량권을 억제하고 관련 규정을 최대한 준수해 내린 것으로 본다”며 “그럼에도 판사 신상을 털면 앞으로 여론조사를 해서 판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B판사도 “헌법이 ‘법관의 독립’을 규정하고 있지만 판사의 신상이 나돌면 이를 의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우려했다. C부장판사는 “군사정권 시절에 권력 눈치를 보느라 법원이 국민에게 큰 잘못을 지었는데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인민재판을 하면 같은 잘못을 또 저지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원 주변에서는 “이번 판결이 법률과 양형기준, 판례를 모두 준수해 내려졌다”는 여론이 상당하다. 법률과 양형기준을 고려하면 상해치사죄의 형량 상한은 가중 처벌했을 때 징역 10년6개월이다. 칠곡 계모는 이 상한선에 가까운 징역 10년을 받았다. 울산 계모는 아이가 죽기 전에도 상습 학대한 사실이 인정돼 상해죄를 추가 적용했다. 이 경우 13년6개월까지 선고할 수 있다. 재판부는 범행 수법의 잔혹성 등을 이유로 약간의 형을 더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를 적용한 것도 또 다른 논란거리로 대법원 판례를 고려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죽이려는 고의가 있었으면 살인죄가 인정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상해치사죄를 적용해야 한다. 대법원은 살인과 상해치사를 구분할 때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범행의 동기, 사용 흉기의 유무·종류·용법, 공격의 부위와 반복성, 사망의 결과 발생 가능성 정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검찰은 칠곡 사건에서 “폭행 이틀 뒤 숨진 점 등을 고려하면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처음부터 상해치사죄로 기소했다. 울산 사건 재판부는 “흉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폭행 당시 출혈이나 호흡 곤란이 없었으며 아이가 의식을 잃자 119에 신고한 뒤 심폐소생술을 했다”며 상해치사죄를 적용했다. 한 변호사는 “맨손으로 때렸을 때 살인죄가 적용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B판사는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노역 일당을 5억원으로 책정한 ‘황제 노역’ 판결은 재량권의 과잉이 문제였기 때문에 기수 낮은 판사들이 비판에 수긍하는 분위기였지만 이번은 다르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