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학생증 月 5만원에 빌립니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과외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황모씨(46)는 최근 한 학부모로부터 황당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황씨가 소개한 과외교사가 대학생이 아니었다는 것. 학부모는 황씨에게 최근까지 지급한 석 달 치 과외비를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황씨는 해당 교사에게 자초지종을 묻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번호가 이미 바뀐 상태였다. 황씨는 과외교사의 대학에 문의한 결과 학생증이 월 3만원에 불법적으로 대여된 사실을 알았다.

대학교 학생증이 불법적으로 거래되고 있다. 중고 물품 거래 커뮤니티인 네이버 ‘중고나라’에서 ‘학생증 대여’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일정 금액을 지급하고 학생증을 빌리겠다는 글이 수십건 뜬다. 학생증 한 개에 월 3만~5만원의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

학생증 대여 목적은 주로 ‘대학 도서관을 이용하고 싶다’는 내용이 많지만, 이렇게 대여된 학생증은 과외 사기, 휴대폰 부정 개통 등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

온라인으로 휴대폰을 개통할 경우 주민등록번호가 표기된 대학 학생증은 신분 확인 수단으로 쓰인다. 지난해 8월 미래창조과학부와 이동통신 3사가 온라인 판매점에서 휴대폰을 개통할 때 가입자의 신용카드와 공인인증서만으로 신분 확인을 하자고 협의했지만 아직도 다른 사람 신분증이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상일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지난달 24일 미래부로부터 제출받은 ‘휴대전화 부정개통 파파라치 신고포상제 현황’을 분석한 결과 최근 6개월간 타인의 신분증 사본을 이용한 부정 개통 사례만 9561건에 달했다.

대학 기숙사나 도서관 등에서 일어나는 범죄도 불법 거래된 학생증이 원인인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 8월 부산의 모 대학 기숙사에 한 남성이 들어가 여학생을 성폭행한 사건도 인터넷 학생증 거래가 사건의 발단이었다.

학생증을 부정 사용할 경우 형법 제230조(공문서 부정 행사)나 형법 제236조(사문서 부정 행사) 위반으로 처벌받지만 대학들은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상황이다. 서울지역 모 사립대 학생지원 담당자는 “학생증이 불법으로 거래되는 것을 몰랐다”며 “현재 딱히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데 문제가 커질 경우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민 기자 induetim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