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일방통행식 정보유출 수습책
단말기 전환 문제는 사실 수년째 논쟁이 되고 있는 이슈다. 전환의 필요성에는 다들 동의하지만 수반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다. 정부는 자금력이 있는 카드회사들이 교체비용을 대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카드회사들은 혼자만 낼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가맹점을 관리하는 중개업체인 밴(VAN)사와 가맹점들도 단말기 교체로 이득을 보기 때문에 비용을 같이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소신과 달리 이날 회의에 참석한 카드사 수장들은 한마디의 반론도 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당국의 요구에 “잘 알겠습니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고객 정보유출의 ‘원죄’를 의식해서일 것이다. 한 참석자는 “누가 봐도 무리한 요구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이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카드사 사장들은 규제산업을 영위하면서 감독당국의 눈 밖에 나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묘한 시점에 당국의 비위를 맞추는 듯한 행태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혹 돈을 좀 내는 걸로 카드 정보유출 사태 후폭풍을 무마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면 큰 착각이다. 카드회사들이 머리를 조아려야 할 상대는 당국자가 아니라 성난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당국의 압박도 상식 밖이긴 마찬가지다. 정보 유출사태 재발을 막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곤궁한 입장에 처한 카드사를 압박해 현안을 마무리하고 싶은 유혹도 클 것이다.
그래도 밀어붙이기식 해결책은 아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업계와의 신뢰를 해쳐 더 큰 화를 부르는 단초가 될 뿐이다. 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만만한 카드사들을 동원해 손쉽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관료적 발상”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금융사들은 굴복시킬 대상이 아니라 시장 발전을 위해 동행해야 할 파트너다.
이지훈 금융부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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