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동안 소위 브릭스 국가에서는 글로벌 기업 수가 급증한 반면 한국은 사실상 정체 상태라고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에 포함된 한국 기업 수는 지난 10년간 11개에서 14개로 3개 증가했지만, 중국은 74개나 늘었고 브라질(5개) 인도(4개) 러시아(4개) 등도 모두 한국보다 많은 글로벌 기업을 탄생시켰다. ‘파이낸셜타임스 글로벌 500대 기업’이나 ‘포브스 글로벌 2000대 기업’ 등 다른 기준을 적용해도 사정은 비슷하다.

거론되는 이유가 없지 않다. 한국 제조업은 어느 정도 성숙기를 지나고 있지만 브릭스 국가들은 풍부한 천연자원, 값싼 노동력 등을 앞세워 이제 막 고속성장 궤도에 접어들고 있다는 설명이 그렇다. 국토 인구 등에서 한국의 몇 배에 달하는 만큼 성장 잠재력 면에서 한국을 앞지를 여지가 많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에 대해 성숙기 운운할 게 못 된다.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 중 미국 기업 수는 132개이고, 일본(62개) 영국(37개) 프랑스(31개) 독일(29개) 등이 한국(14개)의 두 배를 넘는다. 새삼 천연자원이나 인구를 핑계 삼는 것도 우습다. 내수시장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야 하는 것은 한국만의 숙명도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런 요인들이 아니라 갈수록 심해지는 반기업 정서, 특히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다. 비대한 대기업이 서민과 중소기업을 갈취해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식의 근거없는 공격이 판친다. 글로벌 기업을 키우는 것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작은 나라 안에서 오손도손 나눠먹자는 주장이다. 동반성장이니 중소기업적합업종이니 골목상권이니 하는 구호들이 다 그렇다. 경제민주화는 그 결정판이다. 기업을 죄악시하고, 기업인을 예비 범죄인으로 취급하며, 이중 삼중으로 기업활동을 규제한다. 기업이 성장을 기피하는 피터팬 신드롬이 만연하고, 글로벌 기업이 더 늘어나지 않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결국 규제혁파가 관건이다. 그래야 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