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 추진 등 정부의 잇단 규제 완화와 봄 이사철 수요 덕분에 서울 강남 재건축 단지의 매매가격이 오르고 있다. 최근 2주 만에 호가가 3000만원 뛴 서울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한경DB
최근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 추진 등 정부의 잇단 규제 완화와 봄 이사철 수요 덕분에 서울 강남 재건축 단지의 매매가격이 오르고 있다. 최근 2주 만에 호가가 3000만원 뛴 서울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한경DB
4일 서울 강남 최대 재건축 아파트인 개포주공1단지 상가 내 K부동산에는 전화 문의가 이어졌다. 한 시간 동안 16통의 전화가 걸려왔고, 중개업소 문을 열고 방문한 투자자도 네 팀이나 됐다. 몇 달 전만 해도 생각하지 못했던 변화다. 집주인들이 급하게 매도호가를 2000만원 정도 올리는 바람에 거래는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매수 문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활발하다.

주택시장이 5년간의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와 소형주택 공급 의무비율 완화 등 규제 철폐가 도화선이 됐다. 부동산시장 ‘바로미터(척도)’로 꼽히는 강남 재건축 아파트값이 회복 조짐을 보이는 데다 신규 분양시장도 청약 마감 행진이 잇따르고 있어 서울 강북과 수도권 집값도 동반 상승하는 ‘물결파장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4000만원 뛴 강남 재건축

[긴급진단-'봄바람' 부는 부동산] 강남 재건축 '훈풍' 수도권으로…용인·김포 중대형도 속속 계약
개포지구(개포1·2·3·4·시영)와 잠실주공5, 반포주공1, 둔촌주공 등 강남권 주요 재건축 아파트 호가는 정부의 ‘재건축 규제 완화 대책’이 나온 지난달 19일 이후 최대 4000만원까지 뛰었다.

10억9000만원에 거래되던 잠실주공5 전용 76㎡는 지난달 27일 11억3500만원에 집주인이 바뀌었다. 당초 재건축 초과이익이 유예되는 연말까지 관리처분신청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가 추진됨에 따라 사업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돼서다. 박준 잠실박사공인 사장은 “호가가 3000만원 올랐지만 추가 상승을 기대한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이면서 거래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건축심의와 사업시행인가 등 재건축사업 진행이 원활한 개포지구는 투자자는 물론 내집마련을 위한 실수요자까지 몰리고 있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특히 개포주공1·2단지 옛 10평대 소형 아파트는 매매가격이 5억~7억원대여서 매입을 검토하고 있는 강북과 수도권 세입자들이 많다. 채은희 개포공인 사장은 “7억원이던 개포주공1단지 전용 42㎡는 7억2500만원은 줘야 매입할 수 있다”고 전했다. 1가구 지분을 쪼개 2가구를 짓는 ‘1+1 재건축’을 추진 중인 반포주공1단지 전용 72㎡도 호가가 지난달에만 2000만원 정도 올랐다.

○수도권은 전세난에 매수 관심

강남발 훈풍은 강북과 수도권 일대까지 여파가 미치고 있다. 광화문과 여의도로 이동이 편리해 30~40대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서울 마포구 일대 아파트도 거래와 호가 상승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신공덕동 인근 911공인 이성지 사장은 “정부 대책 발표 이후에도 가격 변화는 없지만 매수 문의가 늘었다”고 말했다. 강북의 대표적 재건축 단지 가운데 한 곳인 공릉동 태릉현대 인근 H공인 관계자도 “2억4000만~2억7000만원 수준인 전용 62㎡의 경우 호가 변동은 없지만 매수 문의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분양 아파트가 많은 김포 풍무지구·한강신도시와 파주 신도시를 비롯해 대형 평형 미분양 아파트가 쌓여 있는 용인 성복지구 등에도 투자자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계약 건수가 늘고 있다. 전셋값 상승 탓에 전세입자들이 매수에 나서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다. 수원 광교신도시 광교대림공인 관계자는 “e편한세상 광교 전용 84㎡ 전셋값은 2011년 말 입주 당시 1억5000만원에서 현재는 2억7000만원까지 올랐다”며 “세입자 상당수가 아파트 매입을 고민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분양시장은 ‘활황’

신규 분양시장도 규제 완화 효과로 실수요자와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수도권 민간 아파트 분양권 매매 제한 기간이 1년에서 6개월로 줄어들고, 과거 주택 보유 이력이 있는 5년 이상 무주택자도 연 1~2%대 저금리 주택담보대출인 ‘공유형 모기지’를 활용할 수 있게 돼서다.

이로 인해 분양 비수기인 2월에도 청약 열기가 나타났다. 전국에서 공급된 14개 단지 중 절반이 넘는 8곳이 높은 경쟁률로 청약이 마감됐다. 위례신도시 ‘엠코 센트로엘’의 경우 평균 12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신규 공급 아파트 물량(7432가구)도 2008년 이후 가장 많았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팀장은 “재건축·재개발 등 민간택지 아파트 분양권 전매제한이 6개월로 단축될 예정이어서 입지가 양호한 단지의 청약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주택시장의 본격 회복세 진입은 봄 이사철 이후를 좀 더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전망했다.

이영진 신한은행 투자자문부 부동산팀장은 “전셋값 급등에 따른 전세입자들의 ‘매수세 전환 에너지’만으로는 주택시장 회복이 이뤄질 수 없다”며 “경기회복 신호가 가시화되면서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합류해야 주택시장이 살아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보형/이현진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