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서울 동숭동 오비맥주 맥주문화체험관에서 소비자들이 맥주 맛을 평가하기 위해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고 있다. 실제 블라인드 테스트는 상표가 붙어 있는 맥주병을 모두 치우고 진행됐다. 최만수 기자
지난 12일 서울 동숭동 오비맥주 맥주문화체험관에서 소비자들이 맥주 맛을 평가하기 위해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고 있다. 실제 블라인드 테스트는 상표가 붙어 있는 맥주병을 모두 치우고 진행됐다. 최만수 기자
지난 12일 서울 동숭동 ‘비어할레’ 2층의 오비맥주 맥주문화체험관. 오후 7시가 되자 평소 맥주를 즐겨 마시는 한국마케팅협회 회원 13명이 모여들었다.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의 맛을 평가하기 위한 ‘블라인드 테스트’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맥주 애호가인 기자도 이 테스트에참가했다.

시음 대상은 모두 5종. 국산 맥주로는 OB골든라거와 하이트가, 수입 맥주로는 일본 아사히 슈퍼드라이, 네덜란드 하이네켄, 미국 밀러가 준비됐다. 모두 시원한 맛이 특징인 라거 맥주다. 참가자들은 1~5번 숫자표가 붙은 투명 플라스틱 컵에 5종의 맥주를 따라 마셨다. 참가자 14명은 시음 대상이 평소 자주 마시던 맥주인 만큼, 5개 모두는 아니더라도 3~4개는 맛을 구분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2개를 맞힌 사람이 4명, 1개를 맞힌 사람이 4명, 아예 못 맞힌 사람도 6명이었다. 5개를 대상으로한 평균 적중률은 0.857개에 그쳤다. 2차 테스트 결과도 비슷했다. 3개를 맞힌 사람이 1명, 2개 1명, 1개 6명, 하나도 못 맞힌 사람이 6명이었다. 평균 적중률은 0.785개였다. 두 번의 테스트에서 1개만 맞힌 안소환 씨는 “상표를 가리고 마셔 보니 맛을 도저히 구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역시 블라인드로 이뤄진 맥주 맛 평가(5점 만점, 두 번 테스트 평균)에선 OB 골든라거 3.42점, 하이트 3.37점, 하이네켄 3.10점, 아사히 2.60점, 밀러 2.55점을 기록했다. 국산 맥주가 맛이 없다는 일반적인 평가와는 동떨어진 결과였다. 브랜드에 대한 선입견이 국산 맥주를 깎아내리고 있다는 결론이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팀이 지난달 발표한 실험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국내산 라거 맥주 3종과 수입라거 맥주 2종을 놓고 226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선호도 조사를 했다. 상표를 볼 수 없도록 블라인드 테스트를 벌인 결과 참가자의 70.8%가 국산 맥주 쪽에 선호를 나타냈다. 하지만 상표를 부착한 다음 벌인 테스트 결과는 정반대였다. 수입 맥주를 선호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52%를 넘었다. 문 교수는 “맛 이외의 브랜드나 마케팅 등의 요소가 맥주 선호도를 결정했다”고 진단했다.

'맛없다'는 국산 맥주, 블라인드 테스트 해보니
국산 맥주는 그동안 싱겁고 맛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독과점 때문에 맛을 개발하지 않는다는 비난도 쏟아진다. ‘맥아(맥주의 주원료인 보리) 함량이 낮다’ ‘국산 맥주는 거품이 금방 꺼진다’ ‘유통과정에서 관리가 부실하다’ 등이 맛없는 맥주의 근거로 제기됐다. 결국 홍종학 민주당 의원은 맥아 의무 사용 비율을 10% 이상에서 70% 이상으로 높여 맛을 좋게 하자는 주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은 국산과 수입맥주의 맥아 비율에 큰 차이가 없는 등‘맛없는 맥주’의 근거로 제시되는 것 중 상당수가 잘못된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한다.

전문가들은 청량감 선호도에 따라 좋아하는 맥주가 다를 수밖에 없고 △적정온도에서 보관되고 유통되는지 △거품의 정도와 컵의 청결도 등 최적의 상태에서 마시는지 등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국산 맥주 맛’ 논쟁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전문연구 결과가 잇따르면서 맛은 물론 상표도 선호도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정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