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하늘궁전 요리의 비밀…이재길 아시아나 기내식총괄 "간은 조금 세게, 색은 화려하게"
[ 최유리 기자] "호텔 음식이 라이브 음악이라면 기내식은 녹음한 음악을 라이브처럼 들려줘야 합니다. 만들어 바로 내놓는 호텔식과 달리 기내식은 조리 후 최대 12시간이 지나 제공되기 때문이죠."

17년간 쉐라톤, 하얏트 등 유명 호텔 조리사에서 2010년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개발자로 변신한 이재길 케이터링개발팀 과장(40·사진)은 기내식을 이같이 표현했다. 항공기라는 특수한 환경 탓에 메뉴 구성과 위생관리가 훨씬 까다롭다는 기내식. 그러나 그 한계를 극복하고 승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때 희열은 배가 된다고 이 과장은 강조했다.

지난 10일 서울 강서구 오쇠동 아시아나 본사에서 그를 만나 기내식의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 간은 조금 세게, 색은 화려하게…특수한 기내 환경과 벌이는 전쟁

기내식 메뉴를 개발해 승객에게 선보이기까지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낮은 기압, 소음, 협소한 공간 등 특수한 환경에 재료나 조리법이 적합한지를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음식을 재가열 하는 기내식의 특성상 맛과 향을 살리기 어렵다는 점도 이재길 과장이 고민했던 숙제다. 때문에 맛과 향에 더해 시각적인 효과를 강조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되도록 알록달록하게 재료를 구성하고 먹음직스럽게 담는다는 것.

[인터뷰]하늘궁전 요리의 비밀…이재길 아시아나 기내식총괄 "간은 조금 세게, 색은 화려하게"
간도 지상에서 먹는 음식보다 세게 하는 편이다.

"지속적인 소음과 협소한 공간이 주는 피로감은 미각을 둔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내식은 간을 좀 강하게 하는 편이죠. 같은 기내에서도 소음이 덜한 앞쪽의 상위 클래스는 간을 약하게 일반석은 이보다 조금 세게 합니다."

기내라는 특수한 환경은 메뉴 개발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이 과장이 개발을 주도한 콩나물밥도 어려움을 겪었던 메뉴 중 하나다.

"콩나물밥을 식혔다 재가열하면 수분이 빠져나가 콩나물이 질겨졌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조리법을 테스트해봤죠. 콩나물을 따로 삶아 그 물에 밥을 하고 나중에 밥과 섞으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위생에 대한 기준도 일반식보다 훨씬 까다로운 편이다. 음식을 먹고 기내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한 외국 항공사에서 기내식을 먹고 단체 식중독이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조리사가 베인 손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음식을 만들었기 때문이었죠. 조종사까지 배탈이 났으니 하마터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후 기장과 부기장의 기내식 메뉴가 달라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그만큼 위생과 품질은 기내식의 기본 요건입니다. 그래서 조리사들의 손 씻는 방법과 시간, 식기 관리법까지 위생 기준을 디테일하게 만들었습니다."

◆ 김치찌개·포두부보쌈 정통 한식으로 승부…쌈밥 성공 넘어설 비장의 무기는

[인터뷰]하늘궁전 요리의 비밀…이재길 아시아나 기내식총괄 "간은 조금 세게, 색은 화려하게"
이 과장은 빨간 양념 김치를 이용한 한식 메뉴 개발자로도 알려져 있다. 냄새 등을 이유로 기내식에서 금기시 된 양념 김치를 주 메뉴로 내놓은 것은 아시아나가 처음이다.

"한식은 한식답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아시아나 기내식개발팀의 철학입니다. 어설픈 퓨전은 국적 불명의 음식으로 이어지기 쉽거든요. 다행히 한류 열풍 덕에 외국인들도 김치 냄새에 반감이 적었습니다. 김치 스테이크, 김치 프리타타보다 한식 그대로의 김치찌개가 가장 반응이 좋았죠."

다양한 김치 메뉴의 성공에 이어 포두부보쌈을 내놓기도 했다. 얇게 포를 뜬 두부를 돼지고기와 싸먹는 방식이다.

"산에 갔다가 우연히 먹어본 메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대신 외국인들도 즐길 수 있게 변형을 시켰죠. 우선 흑마늘을 갈아 넣고 고기를 삶아 특유의 누린내를 없앴습니다. 외국인들이 보쌈 요리에 낯설지 않도록 훈제한 고기를 내놓는 것도 특징이죠."

정통 한식으로 기내식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그이지만 아시아나의 대표 메뉴인 쌈밥의 아성을 넘겠다는 목표는 지금도 여전하다.

그가 주목하고 있는 비장의 무기는 바로 떡이다. 이번 동절기에 떡국을 내놓는 것을 시작으로 떡에 대한 가능성을 가늠해볼 생각이다.

"외국인들은 껌 같다고 생각해서 떡에 대한 반감이 있습니다. 대표 정통식인데다 모양이 예뻐서 디저트로 활용하기 좋은데 말이죠. 우선 떡국으로 반응을 살펴보고 떡 관련 메뉴를 본격 개발할 생각입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지역 특색을 살린 한식 메뉴를 소개할 예정이다.

"지난해 횡성 한우로 지역색이 담긴 기내식을 준비했는데 구제역이 터지면서 접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팔도의 맛을 담은 기내식은 나중에라도 꼭 도전해고 싶어요. 내년 대형기 A380 도입 시 선보일 기내식 메뉴가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입니다."

한경닷컴 최유리 기자 now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