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이방인의 삶을 지긋이 응시하다…'풍경'
영화 '망종' '경계' '두만강' 등으로 칸, 베를린, 베니스 등 해외 유수 영화제를 두루 다닌 장률 감독이 처음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해외 이주 노동자들의 얼굴과 그들을 둘러싼 다양한 풍경을 담은 작품 '풍경'이다.

다큐멘터리는 카메라를 든 사람의 시선이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번 작품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장률 감독의 눈길이 오롯이 담겨져 있는 듯하다.

중국 동포 출신인 그가 이주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낯설음이나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래 바라봐 왔던 풍경을 바라보듯 그들을 그저 지긋이 응시하는 카메라에서는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다.

전작 극영화들이 보여준 건조하고 차가운 시선에 비하면 두드러진 차이다.

안개 자욱한 도로와 어두운 터널의 풍경으로 시작해 인천국제공항, 서울 답십리 부품상가, 이태원 이슬람 사원, 대림동 조선족타운, 마장동 축산물시장, 안산의 목재공방, 염색공장까지 영화의 주된 그림은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공간의 풍경이다.

그 사이 사이에 사람들의 얼굴이 있다.

그들이 일하고 밥먹고 기도하는 모습이 풍경의 일부처럼 무심히 담겨 있다.

그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관객에게는 새로운 체험이 된다.

그리고 그 풍경은 관객의 눈에 점점 각인되며 이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이어 카메라 속에서 입을 여는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보는 사람의 마음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킨다.

이들이 말하는 내용은 흔히 TV 다큐멘터리들이 소개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딱한 사연이나 열악한 현실 고발 같은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어느날 밤 꾸었던 꿈에 관한 이야기다.

꿈에서 죽은 어머니를 만났다거나 고향에서 가족, 친구들과 모여 잔치를 벌였다는 얘기, 로또에 당첨돼 현대자동차에서 만든 고급 차를 샀다는 얘기, 고향에 살고 있는 아내와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는 얘기 등 소박한 소망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그런가 하면, 술을 마시면 개처럼 행동하던 아버지가 꿈에 나와 회초리로 때렸다는 얘기나 일하던 공장 사장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내용의 꿈을 무수히 반복해서 꾸었다는 얘기, 꿈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길이 없어지고 강물로 변했다는 얘기 등 악몽에 관한 것도 많다.

특히 일을 하다 큰 화상을 입게 된 이주노동자가 들려주는 꿈 이야기는 가슴을 아프게 한다.

영화는 섣불리 이들의 마음 속을 파헤쳐 보이겠다는 만용을 부리지 않고 담담히 이들의 꿈 이야기를 풍경에 녹여 자연스레 이들의 마음 한 켠을 엿보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은 소망, 낯선 타지에 와서 느끼는 외로움과 막막함, 노동의 고단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 등에서 비롯된 이들의 꿈은 우리 역시 한 번쯤 꾸었던 꿈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영화는 애써 이해나 소통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꿈 이야기를 통해 우리와 그들 사이에 있을지 모르는 어떤 경계를 무너뜨리고 그저 똑같은 '사람과 사람 사이'(人間)로 만나게 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로 시작한 이 작품은 단편으로 먼저 공개됐다.

감독은 당시 촬영분을 다시 편집해 장편으로 완성했다.

12일 개봉. 상영시간 96분. 전체관람가.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mi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