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가 기업 최고 연봉자의 급여를 제한하는 국민 발의안에 대해 24일 국민투표를 실시했으나 결국 부결됐다.

스위스 공영 SRF 방송은 이날 스위스 전역 투표소 출구조사 결과, 이번 발의안에 대한 반대표가 66%에 달해 사실상 부결됐다고 보도했다. 표본오차는 ±2%포인트다.

발의안의 핵심은 기업 최고 연봉자와 최저 연봉자의 급여 차이가 12배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이른바 ‘1 대 12 법안’이다. 앞서 지난 3월 기업 경영진의 과도한 보너스를 제한하는 발의안이 국민 67.9%의 찬성을 얻어 이번 투표 결과에도 관심이 모아졌다.

이날 국민투표는 스위스 좌파 정당 ‘젊은 사회민주주의(JUSO)’가 갈수록 커지는 스위스의 소득 격차를 지적하며 국민 13만명의 서명을 받아 청원해 이뤄졌다. 데이비드 로스 JUSO 대표는 이날 “실망스럽지만 우리가 졌다”며 결과에 승복했다.

스위스에선 세계 최대 식품업체 네슬레, 제약사 로슈 등의 기업 내 임금 격차가 200배가 넘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졌다. 스위스 노동조합연맹(SGB)에 따르면 1996~2010년 상위 1% 고액 연봉자 임금은 39% 증가한 반면 중·하위 소득자 임금은 각각 6%와 9% 증가에 그쳤다.

높은 임금 격차에 대한 비판에도 발의안이 부결된 데는 다국적 기업을 포함한 스위스 경제계와 정부의 반대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위스 재계는 “발의안이 통과되면 뛰어난 인재들을 유치하기 힘들어지고,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등 부작용으로 국가 경쟁력이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 최대 원자재 거래 업체인 글렌코어와 재보험 업체 스위스리는 “이번 투표가 가결되면 회사를 통째로 외국으로 옮기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업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불안감이 국민들 사이에 확산됐다.

스위스 정부도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내놨다. 세수 감소를 우려해서다. 스위스는 상위 2%의 소득자들이 내는 세금이 전체 세수의 약 47%를 차지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민투표 공식 안내문에 “스위스연방의회가 이 법안에 반대할 것을 권한다”고 명시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