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PC "이제부터 진짜 붙어보자"
“아이패드는 노트북보다 친근하고, 스마트폰보다 강력한 제품으로 인터넷 세상을 손 안에 펼쳐줄 것이다.”

2010년 1월27일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를 공개했다. 선보이기 전 “내 생애 가장 중요한 제품”이라고 말해 애플 마니아들의 기대를 한껏 부풀린 신제품이었다.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1년 만에 1900만대가 팔려 나갔다. 이후 한동안 애플은 태블릿 시장에서 독주했다. 아무도 애플의 아성에 도전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4년 가까이 지난 현재. 태블릿은 ‘정보통신기술(ICT) 최대 격전장’이 됐다. 잡스가 세상을 떠난 뒤 애플의 혁신 동력이 주춤하자 삼성전자 등 수많은 경쟁자들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PC 시장이 지고, 스마트폰 시장은 포화에 다다르자 ICT 업체들은 신성장 동력을 찾아 태블릿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애플을 맹추격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내년 태블릿 시장에서 애플을 제치고 1위에 오른다는 목표를 세웠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애플을 따라잡았다. 내년 세계 태블릿 왕좌의 주인공이 바뀔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잡스가 태블릿을 개발했다고

“누가 태블릿을 처음 만들었을까.” 초등학생들에게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스티브 잡스요.” 틀렸다. 아이패드는 최초의 태블릿이 아니다. 태블릿은 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컴퓨터 공학자인 알란 키가 1968년 만든 ‘다이나북’을 최초의 태블릿으로 본다. 무게 900g 정도에 터치스크린 기능도 있었다. 어린이 교육용으로 개발했으나 상용화에는 실패했다.

이후 1970~1980년대는 태블릿의 암흑기다. 상품성 있는 제품이 나오지 않았다. 1993년 ‘AT&T EQ 퍼스널 커뮤니케이터’가 등장했다. 무선 모뎀 기능을 갖춘 최초의 통신사 기반 태블릿이다. AT&T는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섰으나 2500달러라는 높은 가격 탓에 금방 단종됐다. 같은 해 애플은 ‘뉴튼 메시지패드’를 선보였다. 태블릿보다는 PDA에 가까운 제품이었다. 가격은 700달러로 비교적 쌌지만 성능이 떨어졌다.

1998년 후지쓰는 ‘스타일리스틱 시리즈’를 내놨다. 지금의 태블릿과 가장 형태가 비슷한 제품이다. 윈도95와 윈도98 운영체제(OS)를 장착했고 펜으로 입력도 가능했다. 컬러 터치스크린도 탑재했다. 하지만 가격이 5000달러에 달해 인기를 끌지 못했다. 2002년 마이크로소프트(MS)는 윈도XP 기반의 태블릿을 선보였다. 노트북에 뒤지지 않는 수준의 성능을 갖췄지만 무게가 노트북과 비슷해 실패했다. 무게가 같다면 노트북을 쓰는 것이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ICT 최대 격전장

“올해 말 쇼핑 대목에 누가 태블릿 시장에서 승기를 잡느냐에 따라 시장 판도가 정해질 것이다.”

최근 전자업계 한 임원은 이렇게 전망했다. 태블릿 시장의 패권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얘기다. 주된 배경은 성장성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IDC는 올해 세계 태블릿 시장 규모(출하량 기준)가 2억2930만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에 비해 58.7% 증가한 수준이다. 급성장하는 태블릿 시장 규모는 올해 노트북을 넘어설 전망이다. 2015년에는 노트북과 데스크톱을 합친 전체 PC 시장을 추월할 것으로 IDC는 내다봤다.

태블릿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통신망 발달 덕택이다. 3세대에 이어 4세대 이동통신 LTE 시대가 열리자 모바일 기기로 영화 게임 등 고용량 콘텐츠 이용이 가능해졌다. 소비자들은 스마트폰뿐 아니라 더 큰 화면으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태블릿을 찾고 있다. 태블릿의 성능이 좋아지자 개인뿐 아니라 기업 학교 병원 등에서도 데스크톱이나 노트북 대신 태블릿을 도입해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태블릿을 기반으로 종이문서 대신 전자문서를 사용하는 ‘페이퍼리스 오피스(paperless office) 시대’도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태블릿 시장의 경쟁 여건은 모바일 혁명을 주도한 스마트폰에 비해 훨씬 치열하다. 스마트폰 업체인 애플 삼성전자뿐 아니라 PC 업체인 중국 레노버, 대만 아수스 등도 뛰어들었다. 시장의 무게중심이 PC에서 태블릿으로 옮겨가자 갈아타고 있는 것이다. 서비스 업체들도 있다. 구글 MS 아마존 등이다. 이들은 자사 OS, 서비스 등을 확장할 플랫폼을 확보하기 위해 진입했다. LG전자도 ‘G패드’를 내놓으며 2년 전 실패하고 접었던 태블릿 사업에 재도전했다.

최근 신제품 ‘아이패드 에어’와 ‘아이패드 미니2’를 선보인 애플은 아직 1위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경쟁이 격화하자 시장 점유율이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애플의 점유율은 2011년 52.7%에서 지난해 38.5%로 떨어졌다. 올해 2분기에는 29.2%로 추락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점유율이 지난해 9.7%에서 올해 2분기 16.9%로 뛰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에서 애플을 이긴 전략을 적용, 7~10인치의 다양한 갤럭시탭을 내놔 영토 확장에 성공했다. 구글은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한 안드로이드 OS를 무기로 태블릿 시장 공략에 나섰다. 레노버 아수스 등은 가격 경쟁력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MS가 노키아를 인수한 것이 태블릿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나온다.

더 놀라운 세상이 열린다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태블릿 제품의 진화 속도는 더 빨라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내년 12인치 크기의 갤럭시탭을 선보일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폰에서 성공한 대형화 전략을 태블릿에도 도입해 시장 변화를 주도하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시중에 나온 대부분의 제품은 7~10인치대다. 12인치는 A4용지 크기와 같아 활용도가 높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내년에 곡면(커브드·curved) 태블릿이 나올지도 관심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최근 곡면 스마트폰을 내놨다. 잡지처럼 접거나 휘어지는(플렉시블·Flexible) 디스플레이는 스마트폰보다 화면이 큰 태블릿에 적용했을 때 더 큰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곡면 태블릿으로 영화 등을 감상하면 화면이 더 크기 때문에 곡면 스마트폰보다 몰입감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