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과잉규제로 정부실패 우려"
“기업을 겨냥한 규제가 너무 많다. 정부는 ‘시장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정부 실패’도 만만치 않다.”(재계)

“정부도 노력하고 있지만 입법부에 걸려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게 많다. 재계도 정부 탓만 하지 말고 좀 더 적극 의견을 개진해 달라.”(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재계가 청와대에 각종 규제와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17일 청와대와 재계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30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계를 대표하는 기업인들이 비공개로 만났다. 이날 만남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경제정책위원회가 내년 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듣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재계에서는 경제정책위원장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비롯해 주요 그룹 최고경영자(CEO)와 민간 경제연구소장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1시간30분 동안 이어진 간담회에서 기업인들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부와 재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했지만 세부 현안에서는 ‘날선’ 발언을 쏟아냈다. 조 수석은 정부의 경제정책만으로 경제 활성화를 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재계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참석자들은 ‘고용률 70% 달성’이라는 정부 핵심 정책에서부터 각을 세웠다. 조 수석은 “정부는 고용률 70%를 달성하기 위해 2017년까지 일자리 238만개를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다”며 “이를 위해서는 성장률 4%대 달성, 서비스업 중심 일자리 창출, 근로시간 단축 등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첫 단계는 경제 활성화”라며 “기업들이 투자를 좀 더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한 참석자는 “정부는 제조업에서 일자리 창출이 어려우니 서비스업을 활성화하자는 생각인 것 같다”며 “하지만 제조업 일자리가 늘지 않는 것은 경직된 노사관계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또 “서비스업 활성화도 10여년 전부터 얘기했지만 아직도 제대로 안 되는 것은 규제가 많기 때문”이라며 “결국 관료가 걸림돌이 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일자리 나누기 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한 기업인은 “정부와 정치권은 임금체계 개편 검토도 없이 근로시간 단축 등 일자리 나누기와 관련된 법안만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기업 현장에서 빚어질 혼란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무조건 일자리 나누기를 하라는 식으로 기업에 짐을 떠넘기고 있다는 얘기다.

기업 규제 불만도 많았다. 한 참석자는 “올 들어 국회에서 각종 경제민주화 법안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대부분 과잉 규제”라며 “이런 일을 견제할 시스템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 관계자는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정부는 ‘시장 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따지고 보면 ‘정부 실패’도 많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조 수석은 정부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경제살리기를 위해 정부도 노력을 많이 하지만 수단이 많지 않다”며 “공기업이나 금융섹터를 동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법·제도 등 규제를 완화하려 하는데, (입법권이) 국회에 다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규제완화 법안을 내도 정치권이 처리해주지 않아 발목이 잡혀 있는 답답한 상황을 피력한 것이다. 그는 “재계가 정부에 손만 벌릴 게 아니라 국회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전달하는 등 같이 뛰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인들은 각종 경영 현안에도 불만을 쏟아냈다. 먼저 통상임금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상여금 등 부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급여를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경우 재계 부담이 과중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기업인은 “통상임금 문제는 고용노동부 지침을 기업들이 따랐을 뿐인데 이제 와서 기업들이 잘못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이 나오면 임금체계를 확 바꿔야 하는데 그러면 또 다른 노사 갈등을 야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수석은 이에 대해 “정부도 고민 중”이라고 답했다.

조 수석은 간담회 말미에 내년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성장 중심 기조’로 운영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전날(16일) 박근혜 대통령이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와 만나 나눈 얘기를 참석자들에게 전했다. 조 수석은 “서머스 교수가 ‘재정 건전성이 중요하다’고 지적하자 박 대통령은 ‘중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을 유지해야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성장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며 “내년 성장 중심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적자예산 편성이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이태명/정종태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