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정부 일부 폐쇄)과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로 금융시장의 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가운데 8일(현지시간) 오후 백악관에서 ‘낭보’가 날아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차기 중앙은행(Fed) 의장에 재닛 옐런 부의장을 내정했다는 소식이었다. 디폴트 위기로 급락하던 주가는 반등했고 금리는 떨어졌다. Fed 수장이 바뀌더라도 금융정책의 기조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전망에서다.

미 경제는 셧다운과 부채 한도 증액 협상 결렬 우려에 따른 디폴트 위기 등 정치발 쇼크 외에도 연말 또는 내년 초로 예상되고 있는 Fed의 양적완화(채권 매입 프로그램) 축소라는 대형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점진적 채권 매입 축소’를 예고한 벤 버냉키 Fed 의장의 정책 기조를 그대로 물려받을 수 있는 후임자가 낙점됐다는 것 자체가 시장참여자들의 불안거리를 하나 덜어준 것이다.

[美 Fed 의장에 재닛 옐런] "옐런은 매보다 날카로운 비둘기"…美 '출구' 연착륙 기대 커져

○“출구전략 신중해질 것”

시장이 옐런을 반기는 이유는 그가 버냉키 의장과 마찬가지로 Fed 내에서 대표적인 ‘비둘기파’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마이클 퍼롤리 JP모건체이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은 친숙한 인물에 안도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는 옐런이 중앙은행의 두 가지 정책목표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에 대해 “완전고용을 위해 더 공격적으로 움직이고 완만한 물가 상승 리스크를 기꺼이 감내할 것”으로 예상했다.

옐런은 지난 3월 한 연설에서 “실망스러울 정도로 느린 경기 회복 상황에서 실업자와 그들의 가족이 감내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크다”며 “인플레이션 2% 밑에서는 경기 회복을 위해 유동성의 마개를 활짝 열어놓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버냉키 의장이 내년 1월 퇴임하기 전에 양적완화 축소를 시작하더라도 옐런이 2월 취임한 후 속도를 다시 조절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옐런의 과거 언급 등을 감안하면 아주 신중하게 출구전략을 구사할 것이란 분석이다. 그는 지난해 여러 차례 강연에서 “2016년 후반까지 단기 금리가 제로(0)에 가깝게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2015년 중반까지 제로금리(연 0~0.25%)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버냉키 의장보다 더 공격적인 금융완화 정책이다.

○옐런의 산적한 과제는

Fed 부의장을 지낸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는 이날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지적 수준, 품격, 입증된 판단력, Fed에 대한 이해, 광범위한 경험 등을 보면 옐런보다 더 좋은 적임자는 없다”고 평했다. 옐런과 경쟁하다 낙마한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도 “옐런은 Fed를 이끌 최상의 인물”이라고 했다.

그러나 Fed 100년 역사상 첫 여성 의장에 오르는 옐런의 과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출구전략을 실행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다. Fed는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 회의에서 시장의 예상과 달리 월 850억달러 규모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출구전략 시동을 연말 또는 내년 초로 미뤘다. 정치발 경제위기가 지속되면 자칫 버냉키 의장이 떠날 때까지 시작하지 못할 수도 있다. Fed 내에는 양적완화의 부작용을 우려하며 조기 종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매파’가 적지 않다. 옐런이 통화정책을 둘러싸고 양분돼 있는 Fed를 어떤 리더십으로 이끌지도 관심사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