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박근혜 정부, 증세를 말하기 전에…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각종 감면제도를 없애 복지공약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발상은 처음부터 한계가 있는 것이었다. 지하경제 양성화와 감면제도 개선은 조세제도의 형평성을 높이는 수단이지 세금 수입을 늘리기 위한 수단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하경제는 빙산과 같아서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훨씬 더 크다. 그리고 거기에는 부자들과 대기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하경제를 쥐어짠다는 것이 결국 서민과 영세사업자들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하경제를 없애려면 애당초 지하경제가 생긴 이유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지하경제는 규제와 세금을 피해 숨어버린 경제활동이다. 이를 잡겠다고 규제와 세금징수를 강화하면 지하경제는 더 지하로 숨게될 것이다. 많은 연구결과는 규제와 세금을 강화할수록 지하경제는 더 창궐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려면 오히려 구제를 완하하고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정도다. 그렇게 하면 세금 수입도 장기적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지하경제로부터 세금을 더 걷겠다고 달려들었다. 그러니 동네식당부터 룸살롱까지 반발하는 것이다.

각종 감면제도를 없애 세수를 늘리겠다는 것도 그동안 이 제도의 혜택을 받아온 수많은 사람들의 반발을 초래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조세 감면제도는 대부분 특정 사업이나 집단에 혜택을 주는 것이기 때문
에 이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혜택을 받던 집단의 조직적인 반발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조세저항은 보편적 증세에서 보다는 소수에게 부담이 집중될 때 더 조직적으로 나타나는 법이다.

그러지 않아도 현 정부 출범 후 복지재원을 마련한다고 지하경제를 뒤지고 세무조사를 강화한다고 해서 국민들 분위기가 뒤숭숭하던 터에 중견기업 대리급 수준의 연봉부터 고소득층이라고 세금을 더 걷겠다
고 하니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당국자 표현대로 한 달에 만원 더 내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내는 세금이 정말 어려운 사람을 돕는 복지 재원이 된다면 기꺼이 낼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세금이 나보다 더 잘사는 사람의 육아비용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공무원들 복지를 위해 쓰이는 것은 아닌지, 죽은 사람 연금으로 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니까 단돈 만원이라도 더 내기가 아까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은 순서가 잘못된 것이다. 세금을 더 걷겠다고 나서기 전에 먼저 복지 누수와 복지 사각지대부터 해소하고, 정부 예산 낭비를 줄이고, 방만한 공공부문을 개혁해서 예산을 절약하는 솔선수범과 고통분담을 했어야 한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증세 없는 복지라는 현 정부 정책기조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지난달 발표한 세제개편안은 우리 정치권과 국민들에게 복지에는 돈이 든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 계기가 됐다. 현 정부가 약속한 복지공약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135조원의 재원 조달은 현실적으로 지금과 같은 경기 침체 상황과 한국의 경제력으로는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선거 와중에 급조된 복지공약을 불가침의 성역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불요불급한 사치성 이념형 복지는 뒤로 미루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부터 복지를 제공하고 복지공약의 우선순위를 정해 임기 중 순차적으로 추진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지난번 발표된 세제개편안은 그 자체로 충분한 재원확보도 안 되는 것이었지만, 국민들로부터 비판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지금 이미 시행되고 있는 복지제도에 내가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인다는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증세가 아니다. 현행 복지제도에 대한 획기적인 구조조정과 공공부문 개혁을 통해 예산을 절약하고 정치인과 공무원부터 각종 특권과 특혜를 내려놓은 뒤 더 이상 쥐어짤 곳이 없다
고 국민이 인정해줄 때, 국민적 합의를 얻어 조심스럽게 증세를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복지선진국이라는 북유럽 국가의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이 왜 검소하게 사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가.

김종석 < 홍익대 경영대학장·경제학 kim0032@nat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