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여행의 미학
“여행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은 한 페이지만 읽은 책과 같다.”(성 아우구스티누스)

여행을 뜻하는 영어 단어 ‘travel’의 어원은 라틴어 ‘travail(고통, 고난)’이다. 여행이 고통이나 고난이 아닌 즐거움과 여가로 여겨지게 된 건 자동차와 기차가 등장하며 교통수단이 발달하게 된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하지만 4세기를 살았던 성 아우구스티누스도 여행의 의미와 중요성을 이미 강조한 바 있다. 항상 고생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기 때문 아닐까 싶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1786년부터 2년여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을 자신의 “제2의 탄생이며 진정한 재생”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렇듯 여행은 일상의 익숙함을 벗어나 재충전과 심지어 자신의 시각을 바꿔 보며 다른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식견을 넓혀 제2의 탄생까지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우리의 여행은 어떠한가? 1990년대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물꼬가 트인 한국인의 해외 여행은 소위 ‘깃발관광’인 패키지여행이 주를 이루었다. 여행지의 문화와 그들의 삶을 느끼는 여행이 아닌, 가이드의 깃발만 따라다니며 유명 관광지만 콕 짚어서 돌아보는 형태였다. 최근에는 우리나라도 여행에 대한 의식이 크게 진전되고 있지만, “내가 어디 어디를 갔다 와봤네” 하는 소위 생색 내기와 실적 쌓기 식 여행이 아직도 많은 듯하다. 특히 이런 여행 경향이 최근 일부 젊은 세대에도 유행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휴대폰으로 어디에서든 사진을 찍고 바로 인터넷상에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사진 찍어 올리는 것이 여행의 목적인 양 본말이 전도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문화비평가인 수전 손택도 “여행이 사진에 무엇인가를 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노년에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고집스러운 도전 정신을 발휘해 세계여행을 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30년간의 기자생활 후에 62세의 나이로 이스탄불과 중국의 시안을 잇는 1만2000㎞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혼자서 도보로 횡단한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바로 그다.

그는 공짜로 태워주겠다는 차도 마다하며 교통수단을 일절 이용하지 않고 두 발로만 여행을 마쳤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또 다른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 인간의 설렘을 자극하는 것 중 여행만한 것이 또 있을까? 올리비에의 말을 떠올리며, 지금 이 순간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기 위한 낯선 여행을 계획해보는 것은 어떨까?

김규복 < 생명보험협회장 gbkim@kli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