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관련 소송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공개변론(재판장 양승태 대법원장·왼쪽 일곱 번째)이 5일 오후 대법정에서 열렸다. 공개변론에서는 근로자가 받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할지를 두고 경영계와 노동계의 논리가 첨예하게 맞섰다.  /연합뉴스
통상임금 관련 소송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공개변론(재판장 양승태 대법원장·왼쪽 일곱 번째)이 5일 오후 대법정에서 열렸다. 공개변론에서는 근로자가 받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할지를 두고 경영계와 노동계의 논리가 첨예하게 맞섰다. /연합뉴스
“통상임금은 근로기준법 시행령 6조 ‘소정 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한 월급’에 충실하게 해석해야 한다. 3개월마다 받는 상여금을 포함하면 매월 지급하는 수당의 범위가 들쭉날쭉해질 수 있다.”(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피고 측 참고인)

“예전에 상여금은 경영 성과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에 통상임금으로 보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정기적 고정적으로 받는 임금으로 봐야 한다.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김홍영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원고 측 참고인)

대법원은 월급 근로자가 한 달 초과 주기로 받는 상여금과 휴가비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다투고 있는 갑을오토텍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올리고 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공개변론을 열었다. 대법원은 170석의 방청석이 오후 2시 변론 시작 30분 전에 모두 차자 옆 법정에서 TV로 중계했다.

[대법원 통상임금 공개변론] 회사측엔 "미리 대비 안했나"…노동계엔 "정규직만 이득이라는데"

○상여금 포함 둘러싸고 공방 치열

공개변론에서 피고 갑을오토텍 측은 통상임금을 법령상 개념에 충실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호 김앤장 변호사는 “통상임금은 한 달에 한 번 통상적으로 받는 금품이기 때문에 고용노동부가 1988년 만든 통상임금 산정 지침도 상여금을 제외했다”며 “상여금은 일반적인 근로와 함께 회사에 대한 기여와 근로 장려의 의미가 포함된 것이어서 통상적으로 받는 금품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박지순 교수는 “대부분 기업의 노사가 그동안 합의로 통상임금 범위를 결정해 왔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며 “회사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노사가 합리적으로 결정한 것을 근로기준법 규정을 이유로 획일적으로 재단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원고인 근로자 측 김기덕 법무법인 새날 변호사는 “통상임금 범위 확대는 연간 2600여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근로 관행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원고 측 참고인인 김홍영 교수는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시간외 근로수당이 현실화되고 기업이 부담을 느껴 장시간 근로가 해결되고 일자리도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대법관들 경제적 파장에 관심

대법관들은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사회·경제적 파장에 큰 관심을 보였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피고 측에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되는 데 대해 미리 대비를 안 한 것 아닌가”라며 “통상임금 확대에 따라 체불 수당을 지급하면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의견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피고 측은 “기업은 1988년 제정된 노동부 지침과 노사 합의를 20년 넘게 신뢰한 것”이라며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은 근로자 수입이 늘어도 내수가 진작되는 효과는 크지 않다” 고 답변했다. 또 “산업계가 추산한 추가 부담 38조5000억원은 이자나 지연손해금을 반영한 최소 규모”라며 “기업들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해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 대법원장은 원고 측에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된다 해도 대기업 정규직에만 혜택이 갈 뿐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라고 물었다. 원고 측은 “통상임금을 확대하는 것은 임금을 더 받겠다는 게 아니라 임금 체계와 장시간 근로 관행을 개선하려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양창수 대법관은 원고 측에 기업 추가 부담 38조원과 고용률 1% 감소 등 사회·경제적 파장을 반복해서 서너 차례 물은 뒤 원고 측 핵심 주장인 ‘통상임금 확대를 통해 장시간 근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데 대해 “기업과 노동자의 굳어진 양식이고 노동자가 희망한 부분이 있는 것 아닌가”라고 질문했다. 원고 측은 “근로기준법이 제 역할을 못해서 비롯된 것”이라고 답했다.

신영철 대법관은 “노사 합의가 된 경우에는 고정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과 관련해 “복수노조 사업장이나 노조가 없는 곳은 어떻게 합의하나”라고 질문했다.

○재계 “투자 위축, 일자리 감소 현실화”

재계는 이날 열린 공개변론에서 논의된 통상임금의 범위에 정기상여금이 포함될 경우 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으로 인한 투자 위축, 일자리 감소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38조원(경총 추산)의 임금을 추가로 감당해야 한다면 더 이상의 국내 투자와 신규 채용을 기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A제조사 고위 관계자는 “오늘 공개변론에서 양 대법원장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지적에 공감한다”며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되면 귀족 노조로 불리는 대기업 강성노조는 혜택을 보겠지만 작은 기업은 도산까지 가는 등의 부작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법원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행정부가 ‘1임금 산정기간(1개월) 내에 지급되는 임금’만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현우/양병훈/최진석 기자 hkang@hankyung.com

■ 통상임금

근로자에게 정기적 일률적 고정적으로 주는 시간급, 일급, 주급, 월급 또는 도급 금액이다. 휴일·야근·잔업 수당 등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