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한국외환은행
외환은행은 우리나라가 수출 주도형 경제발전을 추진하면서 외환과 무역금융에 특화된 국책은행으로 1967년 1월30일 출범했다. 개업식에 참석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외환은행이 국제화 수준을 향한 우리의 노력에 있어 선도적 사명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이후 외환은행은 외국환과 무역금융에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며 광범위한 해외 영업망을 가진 우리나라 최고의 글로벌 은행으로 성장했다. 아울러 국내 최초의 온라인 보통예금 출시(1972), 국내 첫 신용카드 발행(1978), 국내 은행 중 가장 먼저 365일 자동화코너 설치(1990) 등 은행산업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1991년에는 민영화가 추진돼 국제분야에 경쟁력을 가진 시중은행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는 외환은행에 커다란 시련으로 다가왔다. 대기업 연쇄 도산에 따른 부실자산 증가와 이에 따른 국내외 신인도 하락 등 위기 속에서 많은 직원이 은행을 떠나야 했고 3분의 1이 넘는 점포가 폐쇄됐다. 독일의 코메르츠은행으로부터 자본을 조달하는 등 경영정상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2003년 8월 론스타 펀드에 인수됐다.

외국계 사모펀드의 인수는 중기적으로 은행의 성장잠재력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단기 수익성 위주의 경영에 치중해 고객기반이 크게 위축됐고, 인적·물적 투자가 부진해서 영업력도 많이 약화됐다. 특히 안타까운 점은 우리나라 은행의 자산 규모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에 외환은행이 그 흐름에 동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기 다음에는 기회가 온다고 하지 않던가. 이제 포화 상태에 이른 국내 금융산업은 해외 진출이라는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한 상황이 됐다. 금융 국제분야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경험과 역량을 가진 외환은행에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지난해 하나금융그룹의 가족이 된 외환은행의 어깨에 이처럼 우리나라 금융 재도약에 앞장서야 할 큰 책무가 맡겨진 것이다.

얼마 전 한국 축구의 풍운아 고종수 수원 삼성 코치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지도자로서의 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선수 시절 내내 따라붙었던 ‘비운’이라는 말과 결별하고 싶다”고 답했다. 외환은행에 몸담고 있는 필자의 꿈도, 이제 외환은행이 겪어온 그간의 ‘어려움’과 결별하고 싶은 것이다. 앞으로 외환은행이 하나금융그룹의 일원으로, 그룹과 한국 금융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주역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화려한 명성의 그 외환은행이 다시 우리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윤용로 < 외환은행장 yryun@keb.co.kr >